[윤주혜의 C] 굳은 얼굴 너머 '표정'…웃고 풍자하는 북녘

  •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제로ZERO: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

  • 탈, 해주항아리, 반닫이 등 한자리

탈과 탈춤 전시공간의 북청사자놀음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탈과 탈춤 전시공간의 북청사자놀음 [사진=국립민속박물관]


뉴스에서 접하는 북한의 얼굴은 대개 둘 중 하나다. 무표정하거나, 기쁨에 겨워하거나. 그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짓에 일제히 팔을 들어 박수를 치며 울먹이거나, 잔뜩 긴장한 굳은 얼굴로 서있다. 어딘가 인위적이다.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난 북녘의 얼굴은 달랐다. 눈을 흘기고, 입을 삐죽이고, 금세 누군가를 놀릴 듯 익살스럽다. 권위 앞에서 표정을 감추기는커녕 마음껏 비웃고 풍자한다. 놀리고 욕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얼굴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달 12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여는 특별전 ‘제로ZERO: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은 광복 이전 북한 지역의 민속자료 316건을 선보인다. 봉산탈춤 등 북녘의 탈과 해주항아리, 반닫이, 금강산 관련 기록이 한자리에 나왔다.  

전시는 잊고 있던 당연한 사실을 끄집어낸다. '우리' 민속 문화가 동시에 개성,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등 '북한'의 민속 문화이기도 하다는 것. 지금은 너무나 먼, 하지만 원래 가까웠던, 아니 하나였던 한반도의 문화를 말이다.
 
탈과 탈춤 전시공간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탈과 탈춤 전시공간 [사진=국립민속박물관]

눈길을 잡는 것은 탈이다. 황해도 지역의 대표 탈춤인 봉산탈춤을 비롯해 북청사자놀음, 강령탈춤, 해주탈춤 등의 탈들이 전시돼 있다. 권위자의 위선을 조롱하고, 웃음과 해학으로 세상을 비틀어 보던 능청스러운 얼굴들이다. 위정자의 손짓 하나에 모두가 같은 표정으로 기립박수를 열렬히 치는 오늘날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한때 북녘 땅을 힘차게 뛰고 구르며, 역동적인 묘기를 펼쳤을 사자탈은 개성이 넘친다. 덥수룩한 갈기에 눈알이 툭 튀어나와 어수룩하거나, 눈을 부라리고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흐리멍덩한 눈의 얼빠진 모습 등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핵'으로 이미지가 딱딱하게 굳어진 오늘날의 북한 모습과는 쉽사리 연결이 안 된다.

그러나 무당 서바이벌, 무당 연프까지 등장하며 무속과 사주 콘텐츠가 유행하는 요즘, 전시장의 '무신도'를 보고 있자니 '역시 한민족인가'도 싶다. 무신도는 무속에서 신령을 모시고 소통하기 위해 사용한 의례용 그림으로, 북한 지역의 무속 전통을 짐작하게 하는 드문 자료다.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 복과 수명을 관장하는 일월대감, 지혜를 주는 글문신장 등 북녁 사람들이 의지하는 다양한 신령을 볼 수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에 아직도 무당이 있을까. 박물관 관계자는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무당’이 아니라 ‘점쟁이’라고 불러요. 점쟁이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라죠. (북 정보기관인) 국가보위부가 영발이 센 무당을 채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이 싫어 탈북한 점쟁이들도 있어요. 영발 덕분에 무사히 탈북했다고 하더군요.”
 
해주항아리 수장 타워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해주항아리 수장 타워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전시장 중앙을 채운 아름다운 해주항아리 88점은 눈길을 오래 붙든다. 옹기의 실용성과 청화백자의 맑은 기품을 함께 지닌 항아리에는 모란과 물고기, 국화 등이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져 있다. 김의광 목인박물관 목석원 관장이 기증한 해주항아리 232점 가운데 추린 것들이다. 저마다 다른 무늬와 모양을 눈으로 한참 좇으면,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다.  
 
해주항아리 문양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해주항아리 문양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처음 수장고 밖으로 나온 박천 반닫이와 작은 소반인 해주반 등도 만날 수 있다. 손때 묻은 사람 냄새 나는 생활용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와 이념 이전의 '제로', 경직된 얼굴 너머의 웃고·놀리고·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이 전시를 권한다.  

전시는 8월 12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에서. 
 
전시 전경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전시 전경 [사진=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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