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사람들ⓛ] "그림과 글을 만나게 하는 사람" — 재수 작가의 창작 철학

누군가는 평범한 하루를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그 하루를 조용히 그림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그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웃음이 되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자신에게는 삶의 중심이 된다. 재수 작가는 그렇게 그림과 글이 만나게 하는 사람이다. ‘나도 만화가’라는 게시판에 올린 3페이지 짜리 만화 한 편이, 그의 인생을 천천히 바꾸기 시작했다.

<모베러 블루스>라는 졸업작품이 수상작이 되었고, 그는 그렇게 ‘작가’가 됐다.그림 실력보다 더 오래 쌓아야 했던 건 ‘힘을 빼는 연습’이었다. 창작의 무게에 짓눌리던 어느 시절, 그는 SNS를 통해 일상과 그림을 연결했고, 그 일상 속 반짝임에서 다시 창작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오랜 팬이었던 사람과 결혼하며 그는 진짜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재수 작가의 그림은 무심한 듯 정겹고, 꾸미지 않은 듯 다정하다. 브러시 하나, 연필 한 자루가 바뀔 때마다 그림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 변화들을 기꺼이 품고, 그는 오늘도 ‘그냥’ 그리고 있다.이번 인터뷰는 ‘그냥’이라는 말 안에 담긴 창작의 진심과, 그림이라는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는 재수 작가의 이야기를 담는다.


 

재수 작가 사진 제수 작가
재수 작가 [사진= 제수 작가]



만화가를 처음 하게 된 계기와 만화가를 하길 가장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리고 만화가를 하면서 성덕이 됐던 경험이 있나. 그리고 성덕이 됐던 경험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나
- 예전에 다음(Daum) 만화에 ‘나도 만화가’라는 아마추어 투고 게시판이 있었다. 군대 제대 후 그곳에 3페이지짜리 짧은 만화를 올렸는데 댓글이 제법 많이 달렸다. 이때 만화에 흥미가 생겨서 만화 전공이 아니었지만 디지털콘텐츠 전공이었다. 대학 졸업 작품을 만화로 진행했다. <모베러 블루스>라는 작품이었고, 그게 만화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약 10년 전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는데 그것 때문에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 당시에는 힘을 빼는 방법을 몰랐다. SNS를 창작에 적극 활용하면서 힘을 빼고 더 많이 창작하고 소통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서 창작의 즐거움을 천천히 되찾게 된 것 같다.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그림으로 남길 때, 일상의 반짝이는 장면을 그림에 담을 때, 그동안 만화를 그리며 다져진 그림 실력으로 원하는 것을 제법 근사하게 그려낼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상당히 마이너했던 초창기의 제 만화를 좋아해준 팬을 만나 결혼했다. 지금은 제가 그녀의 팬이다. 만화가를 하면서 성덕이 된 가장 큰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와의 하루하루 일상이 저에게 큰 영감과 행복을 준다. 제 그림과 제 생각, 저라는 사람을 더 괜찮은 사람으로 나아지게 하는 것 같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 그림과 글을 만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의 기준은 뭔가
-매 그림마다 그 기준이 상당히 다르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잘 그린 그림이 되는 것 같다.
 
 

재수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재수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어떤 그림을 그리고 무엇을 보여줄까를 어떻게 정하나.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작업을 하나
- 영감이 떠오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영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일단 그날 본 어떤 장면을 그냥 꾸준히 그리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 장면은 그날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장면이고 앞으로는 없을 특별한 장면이니까 말이다. ‘그냥’을 들여다보면 무의식적인 이끌림이 있다. 그냥 그린 그림은 결국 제가 좋아해서 그린 그림이더라. ‘그냥’은 창작의 좋은 동기라고 생각하게 됐다.
 
작가님만의 그림체가 너무 마음에 들고 제 취향이다. 자신만의 정체성과 스타일을 찾고 꾸준히 밀고 나가기 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예전에는 고민의 양이 그림의 양보다 훨씬 많았다. 그림의 양이 고민의 양을 따라잡을 때쯤 저만의 그림체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저는 그림체가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고민이 배로 많다. 배로 많이 그리는 수밖에 없다.

SNS에 올리시는 만화 외에도 이모티콘 작업뿐만 아니라 <모베러 블루스>와 <금붕어의 자살>, <파이프시티> 등 여러 만화들을 그리셨는데 분위기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이외에 독자들은 모르지만 작가님만 아는 작업 별로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 그리는 도구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큰 영향을 받는 편입니다. 컴퓨터 작업일 경우 브러시의 종류에 따라 그에 적합한 그림을 찾으려고 한다. 지금은 그냥 기본 브러시를 쓰는 편이다. 수작업의 경우 연필, 샤프, 볼펜, 붓펜, 흑심 스틱 등 훨씬 다양한 도구들로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드는 분위기가 포착되면 그걸 작품이나 그림에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재수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재수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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