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은 단순한 홍보나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종교와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지역에서는 더 섬세하고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이슬람 문화와 왕정 체제가 공존하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지난 10년간 한국문화원이 쌓아온 경험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지 사회의 문화적 감수성과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용희 주아랍에미리트 한국문화원장은 AJP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 종교적 절기와 기도 시간 등이 모든 프로그램 운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며, 공공외교의 출발점은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했다.
문화원의 역할에 대해서는 "문화의 가교로서 신뢰와 공감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일시적인 흥미보다 지속 가능한 관계가 중요하다며, 한국어·영화·전통예술·태권도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상호 이해와 감정적 유대를 넓히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문화원 운영의 핵심 가치는 "공감"과 "지속 가능성"이다. 그는 "단순히 자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현지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교류형·참여형 프로그램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철학은 프로그램 곳곳에서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가 여성 전용 한국무용 강좌다. 그는 "남녀가 함께하는 활동에 구분이 있는 사회적 특성을 고려해, 여성들이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화 강좌도 마찬가지다. 그는 "먹과 붓을 활용한 섬세한 표현 방식에 수강생들이 깊은 흥미를 보였다"고 전하며, 아랍권 전통 서예와의 유사성이 자연스러운 문화적 접점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현지 정서와의 조화 사례로는 사막에서 열린 한국 디저트 체험 행사를 들었다. 그는 "사막은 현지인들의 정체성을 품은 상징적 공간"이라며 "그곳에서 한국 디저트를 경험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군사협력파견부대인 아크부대와 UAE 유소년 태권도 수련생이 함께한 시범공연에 대해서는 "평화와 협력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태권도를 처음 접한 유소년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시범을 선보인 모습은 양국 문화 교류가 만들어낸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이용희 원장은 기억에 남는 사례로 지난해 한국영화제 개막작 "1947 보스턴" 상영을 언급했다. 그는 "주인공이 넘어졌다가 다시 달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며 "그 순간 마음이 통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매주 두바이에서 아부다비까지 1시간 30분을 운전해 한국무용 수업에 빠짐없이 참석한 수강생 이야기를 전했다. "그 학생은 단순한 배움을 넘어, 언젠가 두바이에서 한국무용을 연습하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예술을 통한 포용의 메시지도 강조했다. 국립 자이드 장애인개발원과 협력해 열린 "별, 빛, 그리고 춤" 공연에서 시각장애인 무용수와 자폐성 피아니스트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는 "장애가 장벽이 아닌 예술의 가능성임을 보여준 특별한 무대였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앞으로도 한국문화원이 문화외교의 최전선에서 신뢰와 공감을 잇는 역할을 지속해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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