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던독 해양 터미널에서 운송을 기다리는 차량들. [사진=EPA·연합뉴스]
미·영 간 무역 협상 결과 상호관세 외에 품목별 관세는 얼마든지 협상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미 관세 타격을 받고 있는 자동차·철강은 물론 관세 폭탄을 기다리는 처지인 반도체 등 업종도 새판 짜기에 나설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같은 무관세 쿼터 확보 역시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13일 관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 영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한 25% 관세를 0%로, 자동차 관세 25%는 쿼터를 두고 10%로 낮추기로 했다. 기존 품목관세에 대한 조정 여지가 생기면서 국내 산업계도 기대가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기준 자동차와 관련 부품, 반도체 등 3개 품목이 전체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6%에 달한다. 모두 품목관세 부과 대상이라 미·영 합의 결과에 해당 업계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대미 철강제품 수출액은 43억4686만 달러로 집계됐다.
우리 정부의 협상 역량에 따라 자동차와 철강 등에 부과 중인 25% 관세를 낮추거나 반도체 품목관세 부과를 유예하는 성과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국 사례가 참고 사항이 될 순 있지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영국산 자동차 관세를 10%로 낮춘 데 대해 "드물게 취한 조치"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영국이 자동차 관련 무관세 쿼터(수출 물량 할당제)를 확보한 걸 주목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우리나라도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철강 수출 쿼터를 받아 관세를 피한 경험이 있다.
다만 부작용도 염두에 둬야 한다. 7년 전 정부는 미국과 철강 협상을 타결하면서 무관세 혜택과 연간 쿼터 263만t 제한 조치를 맞바꿨다. 수출 제약으로 미국 수입 철강시장 내 한국산 점유율은 쿼터 적용 전 10%대에서 이후 7~9% 수준으로 후퇴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량은 143만2700대다. 현대차·기아 등이 미국 현지 생산을 70만대에서 120만대로 50만대 더 늘려도 최소 93만대는 한국에서 수출해야 현재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 현지 생산 확대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쿼터 물량이 100만대가 되더라도 단기적으로 점유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산업계가 원하는 만큼의 쿼터 확보가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영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 물량은 연간 10만대 수준이지만 우리는 그 10배가 넘는다. 쿼터로 관세를 회피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영국이 협상 과정에서 연간 10만대 쿼터를 받고 자동차 관세를 낮춘 건 대미 수출량이 적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량을 감안하면 최대 쿼터가 연간 100만대 정도로 예상되는데 그 대가로 관세가 인하돼도 미국 시장 점유율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별·업종별 상황이 다른 만큼 쿼터제에 대한 손익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윤철 키움증권 연구원도 "자동차 수입 쿼터 합의에는 난관이 예상된다"며 "영국 사례와는 달리 수출 물량 대부분이 커버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