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의회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첨단 제조 세액공제(AMPC) 조기 종료를 추진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위기감에 휩싸였다. 미국 내에서 생산 활동을 확대해 온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그동안 이들 보조금에 기반한 손익 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지원이 종료될 경우 적자 전환은 물론 투자 전략 전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미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세제 개편안을 공개하고 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를 기존 2032년에서 2027년으로 6년 앞당겨 종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AMPC의 종료 시점도 당초 2033년 초에서 2031년 말로 앞당겼다. 두 제도 모두 미국 내 배터리 제조에 핵심적인 지원으로 작용해 왔다.
현재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 내 합작 공장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AMPC를 통해 이들 기업은 지난해부터 대규모 세액공제를 수령해왔으며, 해당 지원금은 실적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에만 AMPC로 4577억원을 받아 374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삼성SDI와 SK온도 각각 1094억원과 1708억원을 받았으나, 두 회사 모두 적자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해당 세액공제가 폐지될 경우, 신규 투자에 대한 수익성 확보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수요 성장 둔화와 원자재 가격 부담이 겹친 상황에서 세금 인센티브가 사라지면,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생산거점은 전략적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AMPC나 IRA 세액공제는 단순한 혜택을 넘어 미국 내 생산 생태계의 구조를 형성하는 제도였다"며 "보조금 종료는 기업의 수익성뿐 아니라 향후 투자 유치, 공급망 전략에 근본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편안에는 중국 배터리 기업을 견제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업체를 '지정 외국 단체(SFE)' 또는 '외국 영향 단체(FIE)'로 분류하고, SFE는 법 개정 다음 해부터, FIE는 2년의 유예기간 뒤부터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중국산 배터리의 진입 장벽이 높아질 경우, 미국 내 생산기반을 빠르게 구축해 온 국내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을 배제하는 방향이 유지된다면 한국 배터리 기업에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중장기적 시나리오를 다층적으로 고려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지역 투자 유치를 통해 정치적 성과를 거둔 의원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21명은 세입위원회에 IRA 세액공제의 존치를 요청한 바 있다. 공화당은 현재 하원 435석 중 220석, 상원 100석 중 53석을 보유하고 있어 일부 이탈표 발생 시 법안 통과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IRA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기폭제가 됐듯, 보조금 구조 변화는 미국 내 투자·협력 방식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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