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맞물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 정책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잠잠해지는가 싶던 '셀 아메리카' 재발 가능성과 함께 미국 경제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등급(Aaa)에서 'Aa1'로 한 단계 낮췄다. 이에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2023년 피치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한 데 이어 3대 국제 신용평가사 모두가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아래로 낮췄다. 무디스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의 배경으로 연방정부의 급격한 부채 증가와 감세 정책에 따른 재정 수입 감소를 지목했다.
무디스는 이자 비용을 포함한 의무적 지출이 총 재정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약 73%에서 2035년 약 78%로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현재 검토 중인 재정 법안이 의무 지출과 적자를 다년간 실질적으로 감축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고 신용등급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같은 날 미 연방 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발표한 세제 법안에 대해 표결을 진행했으나 찬성 16표, 반대 21표로 부결됐다. 해당 법안은 개인소득세율 인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2017년 감세법의 주요 조항을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 의회 합동조세위원회(JCT)는 이 같은 감세안이 시행되면 향후 10년간 3조8000억 달러(약 5324조원) 규모의 세수가 줄어들고,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2조5000억 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원 예산위원회는 곧 감세안 표결을 재차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감세안이 통과돼 실행된다면 미국의 재정이 한층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국가 부채는 36조 달러를 넘어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1.2배에 달하는 가운데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미국 정부의 이자 비용 부담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감세안까지 실행된다면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미국 헤지펀드 톨루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스펜서 해키미언 창립자는 2011년 S&P, 2023년 피치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했을 당시 "결국 미국의 공공, 민간 섹터 차입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진 바 있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흐름이 연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트럼프발 관세 폭풍'이 잠잠해지는가 싶던 미국 금융시장에 '감세발 폭풍'과 함께 '셀 아메리카' 흐름이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 인베스트먼트의 맥스 고크먼 수석 부사장은 "대형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다른 안전 자산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면 달러화 수요 감소, 달러 가치 하락이 심화될 수 있다"며 "이는 미국 주식의 매력도까지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에는 신용등급 강등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투자자문사 라운드힐 인베스트먼트의 데이브 마자 최고경영자(CEO)는 "무디스가 공식 발표했지만 시장은 이미 미국의 신용 리스크를 감지하고 있었다"며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2011년 S&P의 등급 조정 때와는 달리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비난했고,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정부의 낭비, 사기, 권력 남용을 근절하고, 우리 사회를 다시 질서 있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통과시켜 바이든이 초래한 난장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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