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교원 열정 없는 '교육 개혁'은 실패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역대 대통령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대선 공약을 제시했고, 교육 부문 과제가 제외된 적은 없을 만큼 교육은 중요시되었다.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국정 과제를 바탕으로 교육부는 유·초·중·고등학교, 대학 및 평생교육을 망라한 개혁 과제를 제시하였다. 현 정부도 교육개혁 9대 과제로 유보통합, 늘봄, 함께학교, 교실혁명, 입시개혁, 교육발전특구, 글로컬대학, 대학혁신 생태계, 교육부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에서 5개 과제는 유·초·중·고등학교 대상 과제이고, 나머지는 대학과 평생교육 관련 과제이다. 현재까지 늘봄학교처럼 상당히 진행된 과제도 있지만, 영유아(0-5세) 보육과 교육 통합, 학생·교사·학부모가 소통하고 서로 존중하는 함께학교, AI디지털 교과서를 통한 교실혁명, 대학입시개혁 등의 과제는 답보 상태에 있다.
지난 4월 28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국회 정문 앞에서 「제21대 대선 10대 교육공약 과제」를 발표했다. 교총이 교원단체여서 10개 과제 중 4개는 교원과 직접 관련되는 것이고, 나머지 6개 과제는 미래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것이다. 이후 지난 12일 각 정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정책공약을 제출했는데, 개혁신당만 ‘교권 보호를 위한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 도입’을 제시했을 뿐 거대 양당의 공약에 교육 관련 내용이 없어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반헌법적 비상계엄으로 파면됨에 따라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어 각 정당이 차분하게 대선을 준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약이 정치·경제 문제와 검찰·사법 개혁 분야에 치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스승의날을 맞이하면서 거대 양당도 교육 관련 정책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유아·초등교육 국가 책임 강화, 학생들의 기초학력 향상 및 학습역량 강화, 학생의 정서와 신체 및 디지털 건강 돌봄, 초·중·고교 시민교육 강화, 고등교육 혁신으로 미래인재 양성(서울대 10개 만들기), 직업교육 강화 및 평생교육 확대,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정책, 교권 보호(근무시간 외 정치활동 자유 보장) 등 8개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 꿈과 미래역량을 키우는 공교육 실현(AI디지털교과서 활용), 학습권과 교권의 조화(아동학대 소송 교사 지원), 저학년 방과후학교에서 예술·체육교육 강화 등을 발표했고, 유보 통합, 고교학점제, 사교육비 경감 등 이미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과제도 공약으로 포함하였다.
주요 정당이 공약한 교권 보호는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므로 교육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소송으로 교사의 교육권이 크게 위축되어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버리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악성 민원과 소송 이외에도 문제 학생의 생활지도와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해 교권이 추락하고 교사의 사기가 저하되어 직업 만족도가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년과 2023년에 실시한 2주기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한국 교원의 직업 만족도가 분석대상 15개국 중 12위에 그친 결과에도 드러난다.
과거에는 학교를 방문하여 “선생님, 우리 애를 때려서라도 가르쳐 주세요”라고 사정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자녀를 올바로 길러달라고 선생님의 훈육은 물론 체벌까지도 부탁하던 시절의 사례이다. 이 당시는 학급당 학생 수가 70명 내외인 과밀학급을 지도하는데 교사의 엄정한 지도와 체벌은 필요악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엔 가정에서 왕자나 공주처럼 귀하게 자란 자녀를 교사가 훈육하거나 타이르는 것도 아동 학대로 고발당하니 훈육을 포기하고 무기력한 교사가 된다. 유·초·중·고 시절에 이렇게 훈육 없이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서 강의시간에 엎드려 자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는 전통적으로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직 시절 “한국 교사는 존경받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교권 추락 현상과 맞물려 교직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교사의 수준과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에 교사의 능력에 관한 두 건의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OECD 2022~2023 PIAAC 결과 한국 교원의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은 평균 이하로 OECD 회원국 중 분석대상 16개국 가운데 각각 9위, 10위, 12위에 그쳤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는 종로학원이 발표한 「2025학년도 교대 및 초등교육과 수시, 정시 합격 점수 분석」에 의하면 대입 합격 점수를 공개한 서울교대 등 4개 교대와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의 수시 일반전형 합격선은 내신 6~7등급, 정시 합격선도 내신 4등급 중반대까지 하락했다는 내용이다. 교원양성대학 지원자의 학력 저하가 공교육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교사의 실력 저하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사명감과 열정 부족이다. 교사가 될 사람에게 중요한 자질은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이나 내신 성적보다 교직 적성·인성이다. 이런 자질을 갖춘 사람이 학생을 사랑하고 사명감과 열정을 불태우며 직업 만족도도 높게 마련이다.
교권 추락과 관련하여 오늘날 교사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은 없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훈육이 사라진 학교에서 무기력한 교사가 증가하면서 열정을 가진 ‘스승’은 줄어들고 월급쟁이 ‘선생’은 증가했다는 시선도 있다. 과거에 비해 교사의 처우는 개선되었으나, 학부모에 비해 교사의 학력은 정체되어 상대적 우위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이제 급변하는 AI디지털 시대에 대비하여 교사도 상급 수준의 공부를 하여 실력을 길러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교육이 국가의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하고, 앞으로도 교육 본질 회복을 위한 교육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 교육의 본질을 실현하는 길은 학생에게 미래를 꿈꿀 교실을 만들어주고, 교원에게 수업과 생활지도·상담에 충실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스승’을 되찾으려면 교권 ‘신장’ 차원을 넘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시대의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 교원의 사명감과 열정이 없으면 교육개혁은 백약이 무효이고 필패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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