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노인의 정신 건강’이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명은 늘었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시간, 즉 건강수명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신체 질환과 더불어 외로움, 우울감, 무력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초고령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대안이 있다. 바로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농업·농촌자원을 활용한 활동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텃밭을 가꾸는 데 그치지 않고 식물을 기르며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정서적 안정을 찾으며, 타인과 상호작용으로 고립감을 해소하는 것이다. 농업이 이제 생계 수단을 넘어 ‘치유의 도구’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네덜란드와 일본은 치유농업을 공공 서비스로 정착시켜 운영 중이며,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춰 다양한 실증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국립식량과학원은 지난해 도시 거주 70·80대 노인을 대상으로 보리·유채를 재배하는 공간에서 음악 치유, 공기정화 화분 만들기, 감자 수확 등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 결과 참여 노인의 우울감은 평균 33% 감소하고 삶의 만족도는 3.4% 증가했다. 또한 맥박, 심박 분포, 자율신경균형 등을 분석해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는 맥파계 결과에서도 노인의 상대적 스트레스 지수가 2.7% 감소했으며, 뇌파 분석 결과 역시 인지와 정서 상태에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치유농업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그 잠재력은 매우 크다. 의료·복지 서비스가 미처 닿지 못하는 정서적 틈새를 메우는 ‘사회적 처방’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지역 사회 중심의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발전한다면 노인은 물론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에게도 폭넓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지금 30·40대가 고령층이 되는 시점에는 국민 5명 중 2명이 노인일 것이라는 전망처럼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그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치유농업이 지닌 가능성은 복지를 넘어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실질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삶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쉼표처럼 치유농업은 노인의 삶을 ‘END’가 아닌 ‘AND’로 이어주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마음을 돌보고 회복을 이끄는 힘으로 노년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심는 이 녹색 처방이 초고령사회가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미래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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