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칼럼] 새 정부 대북정책 첫 단추는 '과거와 마주앉기'

  • 연락사무소 폭파 5년… 소통 채널 복원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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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6·3 조기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권력의 쟁투적 관점에서 최근 국내에 발간된 크리스 헤이즈의 <사이렌스 콜> 소재인 유권자의 ‘주의력’을 사로잡기 위한 사이렌이 TV토론과 유세현장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분단되지 않은 것처럼 분단된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의 주의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불필요한 정쟁에 주의력을 빼앗기고 있지 않은가? 선거 막바지 들어 각 후보 공약 중 민생문제와 지역균형발전 이슈에서 비켜 있던 외교·안보와 남북 관계 정책들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곧 새로운 정부가 임기를 시작한다. 장기간 경색된 남북 관계 전환을 기대하는 이들의 시선은 새 정부의 대북정책 첫 일성에 쏠려 있다.
마침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후보의 한반도 공약의 첫 번째는 남북 소통채널 복원 추진을 통한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로, 핵 잠재력 강화를 내세운 강경 일변도인 김문수 후보와는 차별화된 공약이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남북 관계의 시계는 약 5년 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던 날에 멈춰 서 있고, 소통 채널 복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남북 당국 간 통신선은 두 차례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다. 북한은 2023년 4월 7일 일방적인 통신선 중단 이후 우리 측 정기 통화에 25개월째 응하지 않고 있다. 이는 1985년 이후 남북 간 최장기간 단절 사례에 해당한다.
유감스럽게도 분단 이후 남북 관계는 반복적인 분쟁을 겪으면서도 이를 제도적으로 예방하는 데는 실패를 거듭해왔다. 지난날 혹자는 남북 관계의 허들은 간과한 채 남북 간 기술집약적 퀀텀점프(Quantum Jump)를 통한 비약적인 관계 개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분단 80년간 계속된 지난한 갈지자 행보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과거 사건들에 대한 망각과 패싱이 아닌 역사적 존중과 원인 분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남북 소통 채널의 복원은 5년 전 ‘북한은 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는가’에 대한 체계적 규명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한과 분쟁을 겪는 우리의 편견(bias)을 앞세워 저들을 비이성적 국가로 치부하면 간단할 문제를, 저들의 적대인식 속으로 파고들어가 행위의 동인을 분석하는 것은 때론 고통스러운 일이다. 2020년 6월 16일 폭파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남한의 대북 민간단체에서 뿌린 대북전단은 연락사무소 폭파의 구실일 뿐 본질은 북·미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라는 군더더기 없는 분석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북한 당국의 폭파 행위 근저에 깔린 대남 적대인식의 특질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필자는 세 가지 차원의 보론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 번째 원인은 대북 비방물과 당국이 지닌 적대인식의 상관관계이다. 이를 단순히 대북 비방물에 대한 북한 당국의 히스테리성(histrionic) 오판으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면이 있다. 당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선 중단(2020년 6월 9일)과 폭파(2020년 6월 16일)의 명분으로 주장했던 대북 전단의 경과를 보면 남북이 상호 비방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문 채택 전후로도 9개 탈북민 및 종교단체 주도로 161차례에 걸쳐 체제 비방물이 살포(2018∼2020 PET병 및 전단)되었다. 이미 북한 당국은 2014년과 2019년 사이 관영매체를 통해 9차례에 걸쳐 대북 비방물 살포에 대한 대남 경고성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기에 일관성 있게 축적된 대남 적대인식이 대내외적 폭파의 명분으로 기능했을 개연성이 있다. 또한 남북 간 통신선이 개통된 1971년 이후 북한의 통신선 중단 및 재개 과정에서 나타난 연락기구의 정치화 경향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통신선 중단은 한·미의 군사적 위협 또는 대북 제재, 전단 살포 등에 대한 조치의 일환으로 최고지도자 위임 등의 담화 방식을 채택해 대외적으로 중단 사유를 명확히 밝혀왔다. 반면 통신선 재개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 정전협정일, 조문단 방문 및 친서 교환, 물자지원 및 고위급 회담을 위한 실무회담 제의를 계기로 대내외 매체를 통해 발표하는 형식을 빌려왔다. 대부분 대남 적대 기조를 전환해야 할 명분에 따라 전략적 판단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의 새 정부는 남북 간 연락채널 복원 시 북한 당국이 갈등 국면의 전환을 시도하거나 호응하는 경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원인은 북한 당국이 지닌 연락기구에 대한 기본 인식의 문제이다. 최초 남북 연락기구가 처음 논의되었던 시기에는 상호 물리적 충돌 여부가 기구 운영의 제약 요인이었다. 그러나 1993년 제1차 북핵위기 이후부터는 북한 당국의 대남 혹은 대미 적대인식이 협상 과정에서 상호 연락기구를 최고의사결정자의 정무적 판단을 요하는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이는 1994년 12월 북·미 제네바합의 후속합의서 체결에서 합의된 북·미 연락사무소 교환의 결렬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비유하건대 연락기구가 북핵 문제를 둘러싼 관계국들 간 격렬한 협상의 진전에 따라 주어지는 전리품화된 것이다. 이는 비핵화 협상의 큰 틀 안에서 연락기구 운신의 태생적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남북 간 통신선이 중단된 총 9차례 중 7차례 이상이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에 발생했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원인은 군사지역이었던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기구와 관련 비토세력인 북한 군부가 전면에 등장해 폭파 행위를 전담함으로써 부가적으로는 국내 정치적인 영향력 건재라는 부가적인 목적을 의도했다는 점이다. 남한의 대북 비방물의 연속적인 전개는 실제 군부의 대남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내부 대남·외교라인과 헤게모니 쟁투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동력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실제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평양에서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최선희 부상이 “군부가 핵포기를 절대 반대한다는 청원 편지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수천 건 보냈다”고 언급한 사례나 북·미 제네바 합의에 관여했던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 린 터크가 북한이 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선회한 근거로 군부라인과 외교채널 간 긴장관계를 꼽았던 회고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점증되는 상황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관리가 긴요해졌다. 남북 간 통신선 복원은 접경지역에서 발생 가능한 유무형의 충돌 상황을 관리하는 디폴트값(default value)이다. 새로 출범할 정부가 북한의 적대인식과 행위 환경을 반면교사로 삼아 상호 비방 중지와 소통 채널 복원, 그리고 5년 전 사건에 대해 대남 유감 표명을 단계적·동시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북한에도 이로울 리 없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호혜적 관계로 전환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통일부 과장(서기관) ▷연세대 통일학 박사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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