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경찰 실수로 부과된 범칙금도 효력"…대법, 일사부재리 원칙 재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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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법령을 잘못 적용해 범칙금을 부과했더라도 당사자가 이를 납부했다면, 같은 행위에 대해 다시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행정처분의 확정력’, ‘일사부재리 원칙’, ‘국민의 절차적 신뢰 보호’라는 형사절차의 기본 원칙을 근거로, 수사기관의 착오가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동휠-전동킥보드 혼동에서 비롯된 형사기소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면소 판결을 선고한 원심을 이달 1일 확정했다.

사건은 2023년 6월, A씨가 전동휠을 운전하던 중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핵심은 출동한 경찰관이 A씨가 운전한 전동휠을 전동킥보드로 잘못 판단한 데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전동휠은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음주측정 거부 시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전동킥보드는 개인형 이동장치로 분류되어 범칙금 부과로 갈음된다.

경찰은 이러한 분류 기준을 인지하지 못한 채 A씨에게 10만원의 범칙금만 통고했고, A씨는 이를 납부했다. 이후 경찰이 법령 적용 착오를 인지하고 통고처분을 오손 처리(사후 무효화)하자, 검찰은 A씨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형사기소했다.
 
대법 “납부된 범칙금, 다시 벌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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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형사소송법상 핵심 원칙인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를 적용해 판단했다. 일사부재리 원칙은 동일한 범죄 사실에 대해 이미 확정된 처분이 존재할 경우, 다시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원칙이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163조는 “범칙금을 납부한 사람은 그 행위에 대해 다시 벌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을 근거로 “범칙금 납부 시점에서 행정처분의 효력이 확정되며, 이후 같은 행위에 대해 다시 형사처벌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일사부재리 원칙이 법원의 확정판결뿐 아니라, 행정기관의 통고처분에도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법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형사법과 행정법의 경계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한 판례로 평가된다.
 
절차적 신뢰 보호…행정 실수의 책임은 국가에

재판부는 “담당 경찰관이나 경찰서장은 이미 범칙금 납부가 완료된 사안에 대해 임의로 통고처분을 취소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행정법상 ‘불가변력’ 원칙에 따른 것으로, 한 번 확정된 처분은 사후적으로도 원처분기관이 임의로 변경하거나 무효화할 수 없다는 의미다.

수사기관이 스스로의 착오를 이유로 확정된 처분을 번복하고, 이를 근거로 다시 형사처벌에 나서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또한 재판부는 절차적 신뢰 보호 원칙을 분명히 적용했다. “담당자의 착오로 법령이 잘못 적용됐더라도,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은 공권력의 판단을 신뢰하고 이에 응한 경우, 사후 번복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개인형 이동장치 혼선 속 행정 책임 강조

이번 판결은 급변하는 교통 환경 속에서 경찰 등 수사기관의 법령 해석과 적용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동휠,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 등 개인형 이동수단의 분류와 처벌 기준은 복잡해지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범칙금이 납부된 이후에는 해당 사건에 대해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초동 판단의 정확성과 법령 해석 기준의 명확화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이중처벌을 금지한 데 그치지 않고, 행정처분의 효력, 절차적 신뢰 보호, 법적 안정성을 함께 검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형사절차 내에서 행정적 실수로 인한 국민 불이익을 차단하고, 사후 번복을 제한하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유사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경찰의 법령 착오를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법적으로 명확한 답을 내렸다. 공권력의 실수로 인한 책임은 국가가 부담해야 하며, 국민의 절차적 신뢰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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