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45) 길이 끝난 듯해도 길은 있다 - 유암화명(柳暗花明)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남송을 대표하는 시인 육유(陸游, 1125–1210)는 피가 뜨거운 애국시인이었다. 남송은 대륙을 지배하던 송나라가 금나라에 의해 망하고 강남으로 쫓겨와 세운 나라로, 빼앗긴 중원 수복을 단념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주화파(主和派)가 득세했다. 북벌론을 주창하던 육유는 평화를 구걸하는 조정의 비굴한 태도에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부담스러워 한 주화파의 미움과 배척을 받아 지방관직을 전전하고 파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일만 수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역사상 최다를 기록한 육유는 우국충정이 담긴 시를 많이 썼다. 임종을 눈앞에 둔 병상에서조차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중원을 되찾으면 제사 때 잊지 말고 고할 것을 당부하는 시를 썼을 만큼 육유에게 고토 수복은 평생 이루지 못한 한이었다. 

주화파의 핍박에 시달리던 육유는 55세 무렵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절강성 산음(山陰)으로 낙향하여 여러 해 은거했다. 모처럼 자연과 어우러진 농촌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은 시기였을 것이다. 산음은 맑은 물과 녹음이 우거진 숲이 많아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책을 읽고 시를 짓는 일로 소일하던 육유가 어느 봄날 이십리 밖에 있는 서산을 구경갔다. 산을 오를수록 길은 험해지고 인적도 끊겼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다른 길을 헤쳐가며 산모퉁이를 돌자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우거진 버드나무가 그늘을 이루고 활짝 핀 온갖 꽃들이 비단처럼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산골짜기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고 마침 축제를 벌이던 마을사람들이 낯선 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육유가 집에 돌아와 시 한 수를 썼으니 바로 '유산서촌(游山西村, 산서촌을 노닐다)'이다.

7언율시 '유산서촌'은 육유의 대표작 중 하나로, '산 첩첩 물 겹겹 길이 없다 여겼더니 버드나무 그늘 짙고 꽃 밝게 핀 곳에 또 한 마을이 있네'라고 읊은 둘째 연 '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은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명구다. 성어 '유암화명(柳暗花明)'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아름다운 봄 경치를 이르는 유암화명은 '막혔던 앞길이 트이다', '절체절명의 고비에서 살 길을 만나다', '새로운 경지가 열리다' 등으로 쓰임새가 점차 확대되었다. 

뜬금없는 비상계엄으로 대통령이 또다시 탄핵을 당하고 대선 패배까지 더해져 보수 진영이 패닉에 가까운 혼란과 절망에 빠졌다. 신문과 티브이를 보지 않는다거나 정치에 관심을 끊었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형수욕설과 법카유용으로 대변되는 인성과 도덕성 문제만 해도 비호감인데 각종 범죄 혐의로 감옥행을 사실상 예약해 놓았다시피 한 인물이 온갖 편법과 변칙 플레이로 버티다가 전임 대통령의 돈키호테 저리 가라 할 과대망상 덕분에 운 좋게 대통령 자리를 꿰찬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거다. 그렇다 한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취임사대로만 해 주길 기대하며 지켜보는 수밖에.

그런가 하면 국민의힘은 망조가 든 집안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대선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앞으로 무엇을 바꾸고 어떻게 해 나가겠다는 건지 오리무중인 채 내분만 거듭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는 여전히 당 안팎에 어른거리고 탄핵의 강을 건넜는지도 불분명하다. 당을 나락으로 빠뜨린 구주류 '친윤' 세력은 반성도 사과도 없이 모두의 책임이라 눙치고 망해가는 집 문서에나 눈독 들이면서 신진 소장파의 변화와 쇄신 노력에 딴지걸기 바쁘다. 당내 기득권을 유지하고 텃밭 지역구 잘 지켜 금뱃지 또 달면 된다는 심산이리라.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이긴 정당 같다는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토로가 이 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수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가 고스란히 국민의힘을 향할 수밖에 없다.

여론은 늘 민감하게 움직인다. 탄핵정국에서도 민주당과 호각세를 보이던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21%로 추락했다. 46%를 기록한 민주당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한국갤럽, 6월 2주차 정기조사). 중도층 지지율은 민주당의 1/3 수준을 밑돈다. 같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대구ㆍ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보다 지지율이 낮았다. 부울경에서의 민주당 약진으로 '영남 자민련'이란 멸칭조차 과분할 지경이다. 선거의 승부처인 서울과 수도권의 주도권을 민주당에 내준 지는 이미 오래다. 선거마다 판판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수년 전 이해찬이 호언했던 '민주당 20년 집권론'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와 보수당의 장기집권이 계속되는 동안 노동당은 1979년부터 1997년까지 18년간 야당을 해야 했다. 1992년 총선 패배 후에는 "절대로 다시는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전통적인 좌파 정책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당 안팎으로 절망과 좌절감이 팽배했을 때 당 대표가 된 토니 블레어는 당의 이념과 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하는 '신노동당(New Labour)' 노선을 추진했다. 국유화 등 전통적인 사회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시장 경제를 옹호하고 중산층을 포용하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이른바 '제3의 길', 
'블레어리즘'이다.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를 앞세워 젊고 현대적인 이미지로 당의 면모를 일신하고 노동계급 중심의 정당이라는 기존의 프레임을 벗어나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려 노력했다. 당내 기득권 세력을 설득하고 당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당의 개혁을 적극 추진했다. 수년에 걸친 변화와 쇄신의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18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토니 블레어는 이후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영국 정치를 이끌었다.

현재 국민의힘의 처지는 토니 블레어 등장 이전 노동당의 상황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연이은 선거 패배로 당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은 약화되었고 젊은 세대와 중도층은 외면한다. 영국 노동당이 '사회주의'라는 낡은 이미지에 갇혀 있었듯 국민의힘 역시 '수구 보수', '기득권 웰빙 정당'이라는 인식이 강고하다. 입법권과 행정권을 다 거머쥔 절대권력의 견제는커녕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럼에도 계파 갈등은 여전하고 당을 위기에서 구해낼 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산이 겹겹이 쌓이고 물길이 막혀 더 이상 길이 없는 줄 알았더니 뜻밖에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핀 마을이 나타났다. ‘유암화명’, 막막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국민의힘 앞에 길은 없는가? 찾고자 하면 길이 왜 없겠는가.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새로운 길을 찾아 보란듯이 재기했듯 국민의힘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다만 그 길은 과거의 길과 다를 것이다. 젊고 혁신적인 리더십 아래 영남권 중심 정당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 국민이 원하는 가치와 비전을 새롭게 품고 사즉생의 각오로 뼈를 깎는 쇄신을 할 때 비로소 열리는 길이다. 국민의힘이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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