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44) 하늘에선 비가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을 가려하네 - 천요하우 낭요가인(天要下雨, 娘要嫁人)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1971년 9월 13일 새벽, 중국공산당 권력 서열 2위이자 마오쩌둥의 공식 후계자 린뱌오(林彪ㆍ임표)가 탄 비행기가 몽골을 무단 월경한 후 고비 사막에서 추락하여 동승한 부인, 아들 등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죽의 장막 너머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린뱌오는 '당대의 한신', '전쟁 귀신'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군사전략가다. 장제스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아꼈으나 일찌감치 공산당에 입당한 린뱌오는 정강산 투쟁 시절 만난 마오쩌둥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일제 패망 후 린뱌오는 1948년 만주에서 국민당군을 섬멸하고 국공내전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어 베이징을 함락시키고 장강을 건너 중국 동남부까지 석권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문화대혁명 시절 린뱌오는 마오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군권을 장악하고 후계자로 지명되며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마오는 린뱌오를 앞세워 정적을 제거하고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했으나 원래 의심이 많은 성격인데다 린뱌오의 권력이 자신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는 불안감에 노골적인 견제에 들어갔다. 한신처럼 토사구팽될 처지에 놓였다고 판단한 린뱌오는 이를 쿠데타로 뒤집으려다 미수에 그치고 황급히 소련으로의 망명길에 올랐다.

린뱌오가 항공기편으로 도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마오쩌둥이 분노를 억누르며 격추 여부를 묻는 저우언라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비를 내리려 하고 엄마가 시집가려 하는데, 그가 가도록 내버려 둬라(天要下雨, 娘要嫁人, 由他去吧)." 자신을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배신자가 도망을 가는데 내버려 두라니. 더구나 비 얘기는 뭐고 엄마가 시집간다는 얘기는 또 뭔가. 마오쩌둥은 중국 고전에 해박했다. 이를 바탕으로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나 속담, 한시의 시구 등을 적재적소에 인용하여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는 데 능란했다. '천요하우 낭요가인(天要下雨, 娘要嫁人)'도 그런 예다. 

'천요하우 낭요가인'은 중국 신화의 보고《산해경(山海經)》에 수록된 민간 설화에서 유래했다. 옛날에 주요종이라는 청년이 장원급제를 한 뒤 소원을 묻는 황제에게 자신을 키우느라 고생한 홀어머니에게 열녀문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하자 황제가 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이제 자신의 삶을 찾겠다며 아들의 스승과 결혼하겠다지 않는가. “어머니가 개가(改嫁)하면 황제를 속인 죄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며 주요종이 말리자 어머니는 입고 있던 치마를 빨아 널고는 “이 치마가 내일까지 마르면 개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들은 설마 마른 하늘에 비가 오겠느냐 했지만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폭우가 하루 종일 쏟아져 결국 치마는 마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게 다 하늘의 뜻이니 말리지 말라 했고 소식을 들은 황제도 받아들였다. 

이렇듯 '천요하우 낭요가인'에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나 세상의 일을 하늘의 뜻이나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오쩌둥이 이 말을 인용한 것은 하늘이 비를 내려 주요정의 어머니가 개가했듯 린뱌오가 배신하고 떠나는 게 하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덕분에 린뱌오는 격추를 면했지만 중국 영공을 벗어나자마자 몽골에서 추락사했으니 하늘의 뜻이 오묘하다.

3년 만에 다시 치른 조기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승리하고 제 21대 대통령이 되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게 세상사라더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한겨울 심야에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몰락을 자초할 줄을. 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며 감옥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생각지도 못하던 조기 대선의 기회를 잡고 대통령이 될 줄을. 이런 일을 예측하는 것은 애당초 인간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탄핵과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의 집요한 내란 프레임 씌우기에 국민의힘의 대응은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활로를 외면하고 죽을 길만 찾아갔다. 탄핵 찬반 여부가 계파 갈등으로 번져 원팀이 되지 못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도 못했다. 원칙과 명분 없는 경선도 모자라 후보를 강제로 교체하려는 유례 없는 막장극까지 연출하면서 관망하던 중도의 표심을 잃었고 이준석과의 단일화에도 끝내 실패했다.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재명은 선거 유세에서 “정치는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지고 그럼 우리가 이기는 것”이라는 YS의 말을 인용하며 승리를 자신했다. 얄밉도록 옳은 말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이 연거푸 자살골을 넣은 덕분에 이재명이 집권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거라는 각계의 경고도, '호텔경제학'이나 '커피 원가 120원' 논란도, 유시민의 역대급 망언도 판세를 흔들지 못했다. 지난 반년 간의 사정이 이러하니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것은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듯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친구 간에도 정치 이야기를 나누기 힘든 사회가 됐다. 국민들은 극심한 사회 갈등과 대립, 편가르기에 지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보수진영에서 우려하는 대로 괴물독재, 방탄독재의 길을 걸을까, 아니면 자신이 공언한 대로 경제ㆍ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까? 이 대통령의 취임 일성도 '국민 통합'이었다. 허나 취임사에서 아무리 통합을 강조하고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들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은 이제 없다. 취임사는 그저 취임사일 뿐임을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뼈저리게 학습하지 않았던가. 오죽하면 문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말들 중 유일하게 실천한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을까.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 넥타이를 맨다고 저절로 통합이 되는 것도 아니다.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며 정치 보복의 여지를 남기고, 취임 첫날부터 사법부 장악용이란 의심을 받는 대법관 증원법 강행 처리에 시동을 건다면 통합을 수백 번 외친들 그 말을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이라면 '적폐청산 시즌2'의 마중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내란ㆍ김건희ㆍ채 상병 3대 특검법'은 물론이고 상법ㆍ노란봉투법ㆍ공직선거법ㆍ형사소송법ㆍ방송 3법 개정안 등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든 쟁점법안의 일방 처리는 국민통합은커녕 극심한 정치 갈등만 낳을 게 뻔하다. 말보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국민 통합은 서로 우려하는 바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국민의힘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말을 이 대통령은 새겨들어야 한다.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방탄 3종 세트'라고 조롱받는 방탄복도, 방탄유리도, 방탄입법도 필요 없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유세 과정에서, 취임사에서 한 약속들만 지키면 되니까. 

총리로 내정된 김민석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선거 일주일 전 이렇게 말했다. "DJ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퇴임 후 그 평가를 바꿨다. 이재명은 그와 비슷한 길을 갈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꼭 그 길을 걷기 바란다.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그리하여 5년 뒤 "우리 국민이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뽑아 진영으로 쪼개진 국민을 통합하게 한 것은 때가 되면 비를 내리고 어머니를 개가하게 한 것과 같은 하늘의 뜻이었다"는 내용으로 본고 속편을 쓸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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