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새로 출범한 우리 정부의 조속한 판단과 결정이 필요한 대표적인 사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서해 주권 수호, 하나는 미국의 군함 구축 사업의 지분 확보이다. 이들 사안에는 공통적으로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우리나라는 서해 주권을, 우리 조선업은 일생일대 최고의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역사에 서해를 상실한 정부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서해 ‘내해화’ 공정에 특단의 조치를 조만간 내려야 한다. 앞으로 30년 동안 미국의 해군력 강화라는 장기 계획에서 우리의 지분을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발판을 올해 내에 마련해야겠다.
최근 중국이 서해의 잠정조치수역에 불법 구조물 3개를 설치하면서 그 저의와 목적에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한다. 왜냐면 중국이 우리 서해를 ‘내해화’하려는 심증적이고 정황적인 증거가 산적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그러한 상황으로 몰아가려는 행위를 계속 자행하고 있다. 중국은 2007년부터 잠정조치수역(한·중 양국이 해양 자원 보존을 위해 어선 수를 제한하는 수역)에 부표를 설치했다. 2019년부터는 군사훈련을 연 10회 이상 진행 중이다. 2018년부터는 잠정조치수역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2021년부터는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할 때 우리 선박과 어선에 대해 항행을 금지하는 조치까지 내리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최근 5월 말에도 있었다.
지난 4월 합동참모본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 군함이 우리 관할 해역에 진입한 횟수는 지난 한 해에만 330여 회에 달했다. 올해 4월 중순까지는 100회 이상으로 집계됐다. 2018년부터 중국의 항공모함 랴오닝과 산둥, 그리고 잠수정의 서해 항해가 포착됐다. 2022년 3월과 5월에는 우리 EEZ 내에서 총 3회 출몰했다. 중국 잠수함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7회 발견됐다.
최근 중국 해군의 행각은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중국 군함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약 220~290차례에 걸쳐 서해의 우리 관할 해역에 진입했다. 2023년에는 그 빈도가 약 360회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도 약 330회 있었다. 이제는 한·중 간 이른바 ‘중간선’을 넘어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까지 군함이 출몰한다. 지난 6월 17일 공개된 합동참모본부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2022년에는 약 240회 우리 관할 해역에 진입하다 못해 우리의 어청도 서방 영해 외곽 약 40㎞까지 근접했다. 이 밖에도 흑산도, 홍도, 서격렬비도의 영해 외곽 50~90㎞를 넘나들었다.
우리는 중국의 불법 구조물 문제에 외교적인 대응으로 일관 중이다. 지난 2월과 3월 외교부는 불법 구조물 설치에 항의했다. 4월에는 제3차 한·중 해양협력대화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했다. 이에 중국은 필요하면 한국 측 관계자들의 서해 시설물 현장 방문을 주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떠한 후속 조치는 없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우리의 조사선 온누리호가 이들 구조물에 조사차 접근했다. 중국 해경은 함정 2척과 고무보트 3척 등을 동원하여 무력 차단했다. 그러자 우리 외교 당국은 ‘비례적 대응’ 방안을 추진 중이다. 즉, 우리도 구조물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도 구조물을 설치하면 유엔 해양법의 ‘자제의 의무’를 위반한다. 국제중재소에 문제를 제소해도 쌍방 과실로 치부된다. 더욱이 우리가 이를 과학기지로 둔갑시키면 인적교류의 발생으로 인공섬이 된다. 이 경우 중국의 불법 구조물을 인공섬으로 전환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중국은 이를 요새화할 것이 자명하다. 남중국해에 이 같은 선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행각은 우리 바다를 넘어 하늘에서도 이뤄진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불법 진입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바다와 하늘은 일심동체다. 해상 경계선이 획정되면 상공의 영역도 이와 평행적으로 결정된다. 우리 공군 측 자료에 의하면 사전 통보 없이 중국 군용기 및 전투기가 우리의 KADIZ를 불법 진입한 사례도 급증했다. 중국은 2020년과 2022년까지는 한 해 60~70회 KADIZ를 넘어왔다. 2023년에는 130여 회로 급증했으나 지난해에는 90여 회로 감소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총 430여 회에 걸쳐 이뤄졌다. 이는 중국의 단독 행위만 반영된 것이다. 러시아와의 공동 비행 횟수까지 포함하면 연 100회 이상이다.
최근 들어 중국군이 우리의 바다와 하늘을 넘나드는 이유는 하나다. 이들을 중국의 것으로 획정하기 위함이다. 두 나라 간에 해상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해상 경계선은 EEZ의 획정을 전제한다. 그런데 우리와 중국 사이에 이마저 결정할 수 있는 공간(양측에 200해리 보장)이 없다. 그래서 잠재적 EEZ의 중첩지역에 잠정조치수역이 설정됐다. 이 수역은 공동 관할 수역이다. 따라서 ‘자기네 쪽’에 구조물을 설치한 중국 측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공동 관할 수역엔 우리 쪽, 네 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4년 ‘미 해군 전략 2025’를 발표했다. 핵심 요지는 30년 후에 현재의 290여 척에 달하는 미국 해군력을 390여 척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다. 퇴역 함정을 대체하는 사업까지 포함해 미국은 최소한 약 120척의 함정을 건조해야 한다. 이를 위한 예산은 확보되었다. 연간 300억 달러 이상, 30년 동안 총 9000억 달러 이상의 규모이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는 데 미국 나름의 고충이 상당하다. 부실한 조선업 기반, 제조업의 붕괴와 인력 부족 등 삼중 고충을 안고 있다.
미국의 조선업은 1980년대 이후 거의 존재하지 않다. 이는 미국이 세계 조선업에서 차지하는 비중(1% 미만)에서도 입증된다. 최근 미국이 건조한 선박은 상업선 몇 척에 불과하다. 현재 기준에서 미국이 가용할 수 있는 국유 조선소는 4개, 유지보수 등 선박 건조가 가능한 건선거(드라이 독·dry dock)은 17개뿐이다. 사설 조선소도 7 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 조선소 대부분이 2차 세계대전이나 6·25전쟁 때 설립한 것으로 이미 노후되어 최첨단의 해군 함정 건조에 어려움을 준다. 그래서 미국은 이들 사영 조선소의 생산능력을 0.13%에서 2년 내에 1.3%로, 5년 내에 5%로 끌어 올리려 한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 붕괴 또한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수백 개의 부품과 장비 제조사가 수반되어야 하는 조선업에서 이들의 공백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소와 제조업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로 오늘날 미국의 함정 건조 공정은 계획에 따라 완성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평균 1년 반에서 2년 이상씩 지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당국이 더욱 우려하는 점은 전쟁 시 미 군함의 유지보수 문제다.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미국 내에 조선 전문가나 가용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냉전이 끝나면서 미 해군 내에 조선 전문가는 1200명에서 300명으로 감소했다. 조선 사업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도 거의 고갈 상태이다. 미국 조선 당국이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도 이들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 당초 계획에 5분의 1 정도 충당한 것이 방증한다. 이를 위해 직업훈련 등을 통한 인력 확보를 위한 예산이 몇천만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의 제조업이 절정기에 이르렀던 1979년에 비해 인구가 50% 증가했으나 제조업 종사자 수는 역행하고 있다.
이런 삼중 고충을 안고 있는 미국은 대안을 찾는 데 급해졌다. 자가당착으로 고안한 것이 ‘미 해군의 준비 태세 보장법’이다. 지난 2월 유타주 상원의원 마이크 리(Mike Lee)와 존 커티스(John Curtis)가 발의했다. 이 법안은 미국 현행법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해군 함정과 해경의 함정 또는 주요 부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NATO 회원국이나 미국과 상호 방위 협정을 맺은 인도·태평양 국가의 조선소를 의미한다. 전제조건은 외국 조선소의 건조 비용이 미국 조선소보다 낮아야 하고,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 해당 외국 조선소를 소유·운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한 노력을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 이 법안이 미국 조선업의 부활 계획과 시간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이 인정하는 조선 강국(세계 시장에서 29%를 차지하는 2위 규모)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 해군 재건 계획을 2018년부터 추진한 장본인이다. 그가 우리의 조선업 협력을 강조한 이유다. 조선 강국을 자부하면서도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은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에만 집중한다. 신뢰에 기반한 한·미 동맹 관계를 적극 이용하여 우리가 건조하는 기회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낙후한 조선소를 인수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의 조선소 및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미국이 3년 내에 자국의 조선업 강화하기 전에 우리가 미국을 먼저 설득하여 이를 끌고 와야 한다.
서해 주권을 상실한 정부로 역사에 남아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이 동경 124도로 우리의 해역을 실질적으로(de facto) 설정하려는 속셈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외교적인 해결 방법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강력하게 물리적으로 강제 철거하는 방법도 적극 고려해야 하겠다. 영토 주권 문제에 민감한 중국에 특효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대응이 오히려 문제를 잠잠하게 만드는 효과를 본 선례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두 가지 사안의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에 장악해야 하는 이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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