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국가 이익을 걸고 싸우는 전쟁이다. 깔보는데 참을 수 있겠나?”
지난 9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지바현 후나바시시 JR후나바시 역 앞에 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강경한 어조로 이같이 외쳤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 설령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할 말은 당당하게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최근 이시바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에 대해 발언 수위를 높여 비난하고 나서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향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강경한 태도로 임할 것임을 시사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곧 있을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국내용 발언인지를 놓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다음 날인 10일 민영방송 후지TV 계열 위성방송 BS후지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당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가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한층 더 ‘자립’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지난 3일 참의원 선거 공시 이후, 이시바 총리가 유세를 통해 관세 협상에 대해 언급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최측근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 주도의 관세 협상에서 당장 합의를 이루어내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7일, 일본에 대해 8월 1일부터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서면으로 통지한 후부터 이시바 총리가 관세 협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일본 관세가 지난 4월 발표된 상호관세(24%)보다 오히려 1%포인트 높아진 가운데 이시바 총리의 미국에 대한 강경 발언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자민당 간부들도 비슷한 시기부터 미국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8일, 당 회의에서 “편지 한 장으로 통보하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매우 무례한 행위”라며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총리 관저 관계자는 “참의원 선거 판세가 여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제대로 협상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라고 설명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함께 125석 중 50석 이상을 획득하는 것을 내걸고 있는데, 그리 높지 않은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관세 협상과 관련한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욱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달 3일 선거 공시 후부터 일주일간 정치 관련 동영상 시청 횟수를 분석한 결과, 관세 관련 동영상이 공시 이전보다 2배 늘어났다고 전했다. 특히 이시바 총리의 협상 능력을 문제 삼는 보수계 인플루언서의 해설 영상 시청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야당에서는 이시바 총리의 수위 높은 대미 발언이 향후 미·일 협상의 방해가 될 것이라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지 대표는 “협상장에서는 단호하게 임해야 하지만 그 외의 장소에서는 상대국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갖추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상대가 없는 자리에서, 그것도 국내 선거 전략 차원에서 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국익에 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입헌민주당의 한 간부도 “우롱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라며 “깔보지 말라고 말한다고 해결될 상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20일 투·개표가 진행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당초에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기존 의석수가 66석이라는 점을 고려해 ‘50석 확보’는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실시한 주요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으로 나타났다. 이시바 총리는 선거전 시작 후 일주일 사이에 약 1만Km를 이동해 승부처로 거론되는 지역구를 도는 등 유세 활동에 총력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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