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열린 국내 최대 식품 전문 전시회 ‘서울푸드 2025’와 수입전문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국수입박람회(KIF 2025)’가 베트남 농식품 기업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됐다.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연이어 열린 두 전시회는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먹거리’를 선호하는 한국의 소비 트렌드를 확인하는 동시에 베트남 농식품 브랜드의 잠재력을 뚜렷이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베트남 전통 소스’라 불리는 베트남산 피시소스(느억맘)와 쌀국수 등 베트남 전통 음식 전문 브랜드들이 잇따라 한국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특히 베트남떤선녓공항서비스기업 사스코(SASCO)의 느억맘 브랜드 ‘엉클바(Uncle Ba)’와 ‘푸니’ 브랜드는 한국 바이어와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스코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는 맛뿐 아니라 스토리에 민감하다”며 “전통 제조법을 지키면서도 현지 입맛에 맞는 미세 조정을 통해 한국 시장에 최적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전시장에서 선보인 생쌀국수면 ‘바코에(Ba Khoe)’도 “베트남 쌀국수의 원형을 지킨다”는 콘셉트로 한국 바이어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 소비자의 ‘건강한 간편식’ 수요를 노린 유제품·음료 분야도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 민간 유제품기업 TH그룹은 이번에 살균 발효유 ‘TH트루 요거트’와 RTD(Ready To Drink, 즉석음용음료) 차 ‘TH트루티’를 한국 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TH그룹의 호앙티타인투이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한국의 젊은 소비자들은 맛뿐 아니라 건강, 편리성을 고루 따진다”며 “베트남 농업의 원료 경쟁력과 TH의 제조·품질관리 노하우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주한 베트남대사관도 “베트남 농식품의 강점은 청정 원료와 투명한 공정에 있다”며 기술·표준화를 바탕으로 한국과의 협력이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과 함께 중국, 일본을 합친 동북아 시장은 인구 17억명 규모의 거대 소비권역으로, 베트남 농림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베트남산 농식품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수입량이 꾸준히 늘고 있고, 그중에서도 채소·과일 및 커피가 가장 큰 성장폭을 보이고 있다. 당푹응우옌 베트남채소과일협회 사무총장은 “아직 (한·일) 양국 수요에 비하면 베트남산 채소·과일 점유율은 낮아 시장 확대 여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커피 시장이다. 한국 내 커피 시장은 올해 150억 달러(약 20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베트남산 원두와 커피 관련 가공품은 고유의 맛과 경쟁력으로 한국 시장 내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이미 콩카페, G7을 비롯한 베트남 주요 커피 브랜드들이 한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데 이어 베트남 닥락 소재 국영 수출기업 시멕스코 닥락은 최근 한국에 500킬로그램 수준의 스페셜티 커피 껍질차(카스카라)를 첫 수출하며 베트남 커피의 확장성을 또다시 증명했다.
베트남이 동북아 시장을 공략하는 또 다른 전략은 ‘친환경 스토리'다. KIF 2025에서 베트남 업체들은 플라스틱 저감, 무첨가, 탄소중립 농법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적극 강조하며 차별화에 나섰다. 예컨대 떤니엔의 ‘물에 불리지 않아도 되는’ 월남쌈은 첫날 샘플이 동날 만큼 주목받았다.
이처럼 베트남 농산물들은 각종 박람회 등을 통해 기존의 ‘저가품’ 이미지를 벗어나 품질, 위생, 친환경 공정을 어필하며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베트남의 식음료 분야 스타트업과 신생 브랜드도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한국 바이어와 직거래 기회를 넓혔고, 지속 가능한 생산방식과 투명한 유통을 강점으로 내세운 신생 브랜드들은 ESG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평가이다. 부낌하인 베트남고품질제품산업협회(HVNCLC) 회장은 “베트남 기업이 박람회에 나오는 이유는 단순 판매가 아니라 선진 시장의 기준을 배우고 제품을 국제화하는 것”이라며 “한국 파트너가 원하는 기준과 스토리 구조를 더 잘 이해할수록 장기적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 역시 단순 가격 경쟁력보다는 안전성과 생산 이력에 관심이 높아진 만큼 베트남 농산물의 한국 진출은 앞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한·베 식품기업 간 중장기 파트너십 모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은 “베트남 기업들이 이번에 선보인 제품은 품질과 스토리텔링 양쪽 모두 한국 시장에 적합했다”며 “단기 판매를 넘어 상호 공급망을 이어가는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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