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소나기는 피했지만 …무용지물 된 한미 FTA

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한·미 관세 협상이 8월 1일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앞두고 전격 타결되었다. 핵심은 미국이 우리 수출품에 부과하려던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대신 우리는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및 펀드 조성과 1000억 달러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협상 결과를 놓고 여야 간 시각 차이가 크다. 한쪽에서는 과도한 투자로 인해 우리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국내 투자 공백에 따른 산업 공동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더라면 경쟁국보다 높은 25% 상호관세에 직면하게 되어 우리의 대미 수출이 대폭 감소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이번 대미 관세 협상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까?
 
우선 이번 협상 타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상호관세 부과를 회피하기 위해 8월 1일 시한 전에 타결하려고 노력한 결과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큰 틀에서 중요한 핵심 수치를 중심으로 양국이 합의한 결과이며, 따라서 보다 세부 내용은 앞으로 추가 논의를 통해 확정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협상 시한이 촉박하여 양국 모두가 일단 ‘큰 틀에서 합의, 세부 내용은 추후 협의’로 타결을 서두른 결과다. 이러한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의 타결은 8월 1일 이후 상호관세가 더 이상 연기되지 않고 발효될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8월 7일 상호관세 발효에 서명했으니 이와 같은 판단은 적중한 것이며, 경쟁국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관세 적용으로 일단 소나기를 피한 것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나기는 피했지만(이 점은 분명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 대가가 무엇이고, 앞으로 세부 내용이 어떻게 확정될 것인지에 따라 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부 내용이 불확실한 가운데 협상 결과를 평가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처럼 여야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협상 결과의 평가를 트럼프 대통령 이전의 시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후 시각으로 볼 것인지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 시각으로 본다면 협상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큰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한·미 FTA를 통해 양국의 관세는 사실상 철폐되었는데 이번 협상으로 그 구조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즉 이번 협상 결과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품에는 기존 무관세에서 최소 15% 관세가 적용된다. 반면 미국이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상품에는 여전히 전과 같은 무관세가 적용된다. 세상에 이런 불평등한 협상이 어디에 있을까? 양국이 서명한 한·미 FTA가 트럼프 시대에 들어서 서명도 없는 구두 합의로 일순간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협상 결과를 받아 본 세계 주요국들도 이러한 불평등한 현실에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EU가 미국과 협상한 결과는 우리와 큰 차이 없다. 모두가 대미 수출에 15% 상호관세가 적용되고 우리보다 더 큰 액수의 투자와 미국산 상품을 구매한다(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우리의 투자가 더욱 크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핵심은 일본이나 EU 모두 미국산 제품에는 대부분 무관세를 적용하고 자국의 대미 수출상품에는 대부분 15% 관세를 인정한 불평등한 협상 결과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합의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두 번째 시각인 트럼프 이후 시각이다. 트럼프 이후의 시각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상호관세 부과를 국제통상에서 ‘새로운 정상(new normal)’ 상태로 인정한다. 세계 주요국들이 ‘미국 없는 평등한 세계 경제나 무역’보다 ‘미국 있는 불평등한 세계 경제나 무역’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상호관세 25% 부과는 새로운 출발점이며, 협상을 통해 15%로 낮춘 결과는 비록 일정한 대가를 지불했으나 나름 성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 합의는 큰 틀에서의 합의이므로 여러 가지 불명확한 부분이 많고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은 세부 내용이 조속히 확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투자 및 펀드의 구성과 이윤 배분이 중요하다. (지분) 투자와 융자(대출), 융자보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이윤 배분이 어떻게 되는지 등이 확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얘기하는 대로 투자 및 펀드 조성으로 우리 기업이 어떤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지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산 농산물에 올해 무관세가 적용되는지도 불분명하다.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의 추가개방이 없다는 정부 발표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현재 미국산 농산물이 수입될 때 남아 있는 관세(예를 들면 2025년 기준 미국산 쇠고기는 5.3% 관세가 남아 있다)가 8월 이후 완전히 철폐되는지 불분명하다. 우리 발표를 따르더라도 미국산 제품에 무관세가 적용된다고 하니 드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비관세장벽은 정부가 향후 협의를 계속한다고 하니 최종 결과가 궁금해진다. 다만 자동차 인증이나 동식물 검역은 과학의 영역이지 흥정의 대상이 아니란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EU도 무관세 품목이나 비관세장벽은 미국과 계속 논의를 이어간다고 한다. 아직 협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 협상팀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기대한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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