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중국제조 2025가 가져 온 중국 과학기술 발전과 제조혁신의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최근 저장성 항저우, 원저우, 닝보, 저우산(舟山) 4개 도시 곳곳을 다녀왔다. 저장성은 파격적인 기술혁신과 우수 인재 유입으로 중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혁신창업이 일어나는 곳이다. 2024년 저장성 첨단산업 부가가치는 8013억 위안(약 155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했다. 특히 AI(11.6%), 로봇산업(93.8%) 분야에서 성장세는 눈부실 정도다. 도대체 저장성 혁신창업 생태계와 제조혁신은 어떤 배경과 성장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저장성 3개 도시별 제조혁신 생태계와 특성화된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첫째, 산관학연의 개방형 혁신 AI 생태계의 ‘항저우 모델’이다. 최근 딥시크를 포함한 AI, 휴먼노이드 로봇 등 6개 AI 유니콘 기업인 육소룡(六小龍)이 등장하면서 항저우 모델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항저우는 알리바바 그룹과 지리자동차 등 중국 대표 테크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딥시크 충격 이후 광둥성 선전과 함께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항저우에는 5G혁신 산업단지, AI 산업원, 위항(余杭) AI 타운을 비롯해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AI 산업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5G혁신 산업단지는 기업에 최고 1억 위안(약 200억원)의 R&D 지원, 최대 3000㎡의 임차료 지원, 최대 2000만 위안(약 40억원)의 연간 판매액에 해당한 인센티브 지원, 최대 1000만 위안(약 20억원)의 홍보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항저우 AI 혁신 생태계 현장을 돌며 가장 많이 보고 들은 핵심 문구가 있었다. ‘내가 햇빛∙비∙이슬을 책임질 테니 당신은 건강하게 성장하기만 하세요(我负责阳光雨露 你负责茁壮成长)’ 항저우 창업혁신 생태계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문구다. 정부가 혁신창업 성공을 위해 정책, 자금, 인재 등 모든 것을 지원할 테니 기업은 그런 생태계에서 잘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다. 항저우에서 만난 AI 혁신기업은 이런 친화적인 정책과 풍부한 인재가 있었기 때문에 육소룡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애기했다. 항저우에는 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한 시정부 산하 31개 각 부문 공무원들로 구성된 ‘기업지원팀(助企帮帮团)’이 있다. 만약 기업이 도움을 요청하는 의견을 접수하고 3일 내에 해결해 주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의 업무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항저우의 이러한 우수한 창업혁신 생태계는 많은 외지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동인이 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저장성 상주인구가 73만명 늘어났는데 그중 40만명 이상이 항저우에서 혁신창업을 하기 위해 외지에서 온 35세 이하 젊은 청년들이다. 외지의 젊은 청년들이 항저우 창업 생태계 시장조사차 방문할 경우 평균 7일간 현지 호텔체류 실비용을 제공한다. 항저우 모델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육소룡 중 하나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인 브레인코의 창업 사례다. 브레인코는 창업자인 한비청이 국내 카이스트에서 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우리에게 친숙한 회사다. 한비청은 2014년 하버드대학에 뇌과학 전공으로 박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브레인코를 창업해 일과 공부를 시작했다. 그 시기 항저우 해외 인재 유치 담당 공무원이 직접 보스턴 그의 사무실까지 찾아가 항저우 창업을 적극 권유했다. 한비청 대표는 ‘선전, 상하이 등 여러 도시 공무원들이 연락해 각종 지원 혜택을 약속했지만 직접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까지 와서 자기를 설득한 공무원은 항저우가 유일했고, 또한 뇌과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 2017년 항저우에서 브레인코를 창업하게 되었다’고 애기한 바 있다. 항저우 모델은 우수 인재 유치와 산관학연의 협업과 개방형 혁신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지능화∙자동화∙스마트화로 전환하고 있는 ‘원저우 제조혁신모델’이다. 원저우는 전통적으로 라이터∙조명용구∙열쇠∙구두∙자동차부품 등 다양한 제조생태계가 가내 수공업 형태로 발달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내수공업 원저우 모델이 자동화, 스마트 제조 생태계로 점진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원저우 모델은 구역별로 집적화·세분화되어 발전해 왔다. 루이안(瑞安)의 남성복, 태양광 발전 클러스터, 웨칭(乐清)의 패션의류, 공업전기 클러스터, 룽자(龙嘉)의 지퍼, 단추 산업 클러스터, 루청(鹿城)의 라이터산업단지, 어우하이(瓯海)의 안경과 열쇠 산업타운 등 다양한 원저우식 민영 제조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 예를 들어 원저우 구두산업단지 내 OEM·ODM 전문기업인 쥐이그룹(巨一集团)은 글로벌 브랜드인 보스(Boss)와 자라(Zara) 신발을 위탁생산해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일부 신발제조 공정은 이미 첨단설계와 3D기술을 이용한 자동화 스마트 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또 다른 기업인 캉나이(康奈) 그룹은 지능형 공장을 통해 거의 전 제조 공정이 산업용 로봇의 자동화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캉나이는 창업자인 정수캉 회장이 16세 때 구두공장 노동자로 시작해 중국 최고의 구두 브랜드로 성장한 기업이다. 캉나이 직영 매장에서는 자체 개발한 3D 프린팅 설비, 첨단기술과 AI 디자인을 활용해 소비자 맞춤형 구두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었다. 원저우의 제조혁신 모델은 메이드인차이나의 변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중점실험실을 기반으로 성장한 산관학 삼위일체 모델인 ‘닝보 신소재 제조혁신 모델’이다. 항구도시인 닝보에는 국가급제조업 혁신센터, 동방이공 고등연구원, 중국과학원 닝보 소재공정원 등 신소재 관련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특히 국가급 제조업혁신센터는 중국제조 2025의 5대 중점 프로젝트 중 하나로 현재 중국 전역에 36개의 현지 맞춤형 특화된 기술과 지역특화형 제조업혁신센터가 구축되어 있다. 그중 그래핀(Graphene) 기술의 국가급 제조업혁신센터와 관련 기술 인큐베이터 단지가 바로 닝보에 있다. 그래핀은 탄소원자 한 층으로 구성된 2차원 물질로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는 미래 신소재 중 하나다. 지난 10년간 중국제조 2025 성적표에서 반도체와 함께 산업화와 기술난관을 돌파하지 못한 분야가 바로 첨단 신소재와 핵심전략소재 영역이다. 국가급 그래핀 혁신센터는 중앙정부와 닝보시의 막대한 자금 지원과 정책을 기반으로 중점실험실과 첨단 신소재 관련 기업 간 공동연구, 개방형 혁신을 통해 빠르게 기술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제조업 혁신센터는 그래핀 관련 제품 출시 전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위한 현대화된 플랫폼 역할을 하며 그래핀 기술개발 및 혁신성과의 산업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국가급 그래핀 제조혁신센터의 플랫폼 생태계 모델은 정부는 정책과 자금만 지원하고 모든 운영은 기업식 사업방식으로 진행된다. 자금지원은 시간과 금액이 정해져 있다. 제조 플랫폼은 과학기술부, 닝보시와 그래핀 기업연합회의 3자가 3년 동안 각자 2억 위안(약 400억원)을 출자해 총 6억 위안(약 1200억원)이 투입되어 구축되었다. 3년 이후는 정부가 더 이상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조업혁신센터 플랫폼에 입주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과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기술 상업화와 산업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닝보 신소재 제조혁신 모델은 정부가 자금 지원과 규제 개혁을 통해 다양한 선수와 시장을 먼저 키우고, 그중에서 가장 실력 있고 뛰어난 대표선수(기업)를 선별하는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향후 저장성 3가지 제조혁신 모델이 가져 올 변화가 심상치 않다. 제조대국이었던 중국이 이제 제조강국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고, 그 중심에 저장성이 있다. 중국 제조혁신 생태계의 변화와 첨단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나비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제2의 차이나 쇼크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국가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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