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 사회에서 포퓰리즘은 필요악일 수 있다.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이라면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달콤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한계가 있다. 미래세대의 기회를 앗아가고, 국가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수준에 이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자살행위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노란봉투법'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노란봉투법은 본래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불법 파업을 해도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항이 핵심이다. 이는 곧 '노조가 무엇을 하든 기업은 감히 제동을 걸지 말라'는 선언이다. 한마디로 기업은 노조의 결정에 복종하지 않으면 망해도 좋다는 식의 발상이다. 이쯤 되면 법이 아니라 당선 사례금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조직적으로 지원해 준 민노총 등 거대 노조 세력에 대한 보답으로 내놓은 정치적 선물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법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점이다. 노조 조직률은 전국적으로 약 13%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13%는 민노총과 같은 초대형 노조를 중심으로 막강한 기득권 집단으로 군림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정규직, 고임금 근로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이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상층 노동귀족들을 위한 법이라는 뜻이다. 반면 나머지 87%의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청년 구직자들은 이 법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가 된다.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순간,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이들 약자다.
경제학의 기본은 인센티브다. 성실히 일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와 혁신에 도전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동력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이 인센티브 구조를 정면으로 뒤흔든다. 불법 파업을 해도 책임이 없다는 메시지가 주어진다면, 혁신과 투자의 인센티브는 사라지고, 노조의 힘을 빌려 권익을 지키려는 유인이 강화된다. 기업이 감히 투자와 고용 확대에 나설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이 지난 21일 노벨경제학사 수상자 제임스 로빈슨 교수와의 특별대담에서 지적했듯, 한국은 이미 고용의 경직성이 심각하다. 공무원은 철밥통, 공기업도 철밥통이다. 대기업 노조는 해고를 원천적으로 막아내며 내부 기득권을 지켜왔다. 그런데 이제 불법 파업까지 면책해 준다면, 누가 감히 청년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열어주려 하겠는가.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기회의 사다리이지, 노조 기득권층의 철옹성이 아니다. 노란봉투법은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젊은 세대의 희망을 봉쇄하는 전형적 기득권 수호법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 존중'을 내세운다. 그러나 존중은 공정한 규칙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노조가 법 위에 군림하고, 기업은 불법 파업에도 속수무책이 되는 상황을 어떻게 '선진적 노동 정책'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는 결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길이 아니다. 오히려 소수 노조 귀족의 이익을 지키는 길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 경쟁력이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중국에 비해 R&D 투자 규모에서 현격히 뒤처져 있다. 인구 대비 투자 비율은 높지만, 절대 규모에서는 1/10, 1/100 수준이다. 경제 토대가 취약한 나라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대기업·중견기업의 경쟁력을 노조의 무분별한 요구로 갉아먹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해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국부는 빠져나간다. 선의로 포장된 포퓰리즘이 미래세대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포퓰리즘의 극치다. 선거 때는 '국민을 위한다'는 달콤한 말로 표를 얻고, 집권 후에는 특정 세력의 이해를 위해 국가 전체를 볼모로 잡는 행태,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좀먹는 독(毒)이다. 정치인에게 선거용 포퓰리즘은 애교일 수 있다. 그러나 집권 후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내놓는 포퓰리즘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현금 살포, 기득권 퍼주기로 버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국가는 제도로 흥하고 제도로 망한다. 불법 파업을 면책하는 법은 제도의 파괴이고, 결국 국가 실패로 귀결된다. 오 시장의 지적대로 이 법안은 반드시 국민적 저항으로 막아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공정한 보상과 미래세대를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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