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도 칼럼] 규제자유특구 2.0의 미래

김학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규제 완화는 역대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혁신과 성장'을 위한 규제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특히 신기술·신산업 분야에서는 규제샌드박스 확대를 통해 AI, 바이오헬스, 미래차, 에너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증 특례와 임시 허가를 적극 부여하며 기업의 신사업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 노동, 환경 등 이른바 '큰 바위(big rock)'로 불리는 근본 규제의 해소 없이는 진정한 변화가 어렵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전국 단위의 전면적 규제 완화가 이상적이지만, 현실의 제약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도입된 '규제자유특구' 제도는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했다. 규제자유특구는 특정 지역에 한시적으로 예외를 부여해 새로운 기술을 실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나아가 수도권에 집중된 기술, 자본, 인력을 비수도권으로 분산시키는 분권형 혁신 전략의 거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필자는 중소벤처기업부 주관하에 총리실 등 관련 부처와 협력해 제도 설계에 참여한 바 있다. 시행 이후 규제자유특구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2019년부터 ‘25년 상반기까지 전국 14개 시도에 42개의 특구가 지정되어 수소 모빌리티, 탄소소재, 스마트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기술 실증이 활발히 이뤄졌다. 약15조원에 달하는 직·간접 민간투자 유치, 800여 건이 넘는 특허 출원 등 실증 성과는 양적으로도 괄목할 만하다. 일부 기술은 세계 최초 실증 성공을 통해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술 표준을 선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구체적 성공 사례도 다양하다. 경북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특구는 로봇 기반 자동 해체 공정을 통해 자원폐기물법의 한계를 넘어 세계 배터리 순환 경제의 선두 주자로 도약하고 있다. 부산 암모니아 연료 기반 선박 실증 특구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중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실증, 해운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작년에 신규 지정된 강원 글로벌혁신특구에서는 AI 기반 원격 진료 체계가 지역 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디지털 헬스케어의 현실화를 앞당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규제자유특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실증 종료 후 기업의 지역 정착률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 이는 규제를 잠시 '풀어주는' 것에 그치고, 실증이 끝나면 제도적 지원이 원상 복구되면서 기업은 장기적 투자와 확장이 어렵고,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 체계도 부족하다. 나아가 규제 권한을 가진 부처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위험 회피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 제도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은 규제자유특구가 지향하는 혁신 실험의 장으로서의 위상을 제약하는 구조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자율 주행차 실증을 위해 법 개정 없이도 실도로 테스트를 허용하는 '자율 주행차법'을 제정했고, 일본은 재생 의료 분야에서 '조건부 조기 승인제'를 통해 세포 치료제 상용화를 수년 앞당겼다. 이처럼 기술 실증과 정책·제도 개선의 긴밀한 연동이 시장 주도권 확보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이제 규제자유특구는 규제완화 효과를 전국으로 확산하고 새로운 혁신을 실험하기 위해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 단순한 규제 면제의 장이 아니라, 국가 규제 체계를 실증 기반으로 개혁하는 전초기지로 거듭나야 한다.
 
첫째, 지자체 간 '협력'과 '연계'가 가장 절실하다. 지금까지는 지역별로 흩어진 실증 경험이 '점' 형태였다면, 이제는 이 점들을 '선'으로 잇고, 궁극적으로 '면'으로 확장하는 '혁신 클러스터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소 산업은 울산, 충청, 부산, 강원 등 여러 지역이 기술, 인증, 조달, 운송 체계를 하나의 벨트로 운영할 수 있고, 배터리 산업은 경북을 중심으로 가치사슬을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초광역 협력은 실증의 질을 높이고, 정책 자원의 효율적 분배 및 산업화 기반 마련에도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중앙 부처 간 협업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 실증이 끝난 뒤 규제 정비 지연으로 기술 상용화가 지체되지 않도록, 사전 기획 단계부터 규제 담당 부처가 실증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실증 결과가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각 부처의 소극적 태도를 제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규제 정비 유인책 마련도 필수적이다.
 
셋째, 규제 실증 결과를 신속하게 법·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도록 규제 부처의 법령 정비 책임성과 기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기업이 '해볼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제도가 실제로 바뀐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혁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 실증 이후 사업화, 금융, 판로, 인허가 등 후속 생태계 지원 또한 제도적으로 촘촘히 연계되어야 한다.
 
넷째, 규제 완화 대상을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특구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기획형·성과 확산형 특구, 광역권 또는 메가 클러스터 중심의 초광역 특구 등 민간 주도와 정부 기획이 결합된 전략적 특구 모델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규제 샌드박스를 넘어 '제도 샌드박스'로 진화하여,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도 기준을 설계·정착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규제 완화 실험이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안전성 확보, 정보의 투명한 공개, 사후 책임의 명확화는 필수적이다. 기업에는 확실한 제도 개선의 약속이, 지자체에는 실증 이후 생태계 조성 역량이, 정부에는 실험 결과의 제도화와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에 대한 책임이 요구된다.
 
이제 규제자유특구는 단순한 지역 개발 정책을 넘어, 국가 규제 혁신 전략의 핵심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규제자유특구는 실험이 혁신으로, 혁신이 제도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의 출발점이다. 변화는 '고립된 성공'이 아니라, '연결된 협력' 속에서 가능하다. 한 지역의 실증이 다른 지역의 도약으로 이어지고, 그 경험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규제자유특구 2.0의 미래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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