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요한 시사평론가]
폭력의 시간
어린 시절, 인권이라는 게 뭔데? 밥 말아 먹는 거야? 하던 때라서 가능했지만, 워낙 충격적 사건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가정환경 조사’라는 것이 있었다. 그 시절의 선생들은 어째서 선생질을 할까, 하는 반감이 생길 정도로 – 40여 년 전, 필자의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 매우 폭력적이었다. 그들 역시 그렇게 교육을 받은 것이니 바뀔 기대는 난망.
선생들(대략 45년 生 ~ 55년 生으로 추정)은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손을 들라고 했다. 아이들은 주뼛주뼛 손을 들기도 하고, 어정쩡하게 선생의 말을 들었다.
"집이 자가인 사람?"
"월세인 사람은?"
"자가용이 있는 사람?"
"거~ 똑바로 손 안들래? 엉? 이노무 시키들!!"
내 앞자리의 머스마는 고아원(지금은 ‘보육원’으로 불린다)에서 학교엘 다니던 친구인데, 질문하는 족족 웃는 얼굴로 신나게 손을 들었다. 자가용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은 – ‘선생님’ 아니다, 선생(先生)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일 뿐 ‘님’자를 붙여줄 이유가 없다 – 그 아이를 복도로 데리고 나가서 정말 신나게 팼다. "니가 지금 날 놀리는 거지?" 하면서... 아이는 선생의 스트레스를 푸는 샌드백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뺨을 맞아서 얼굴이 벌겋게 부은 아이는 억울해했다. 자기네 ‘집’은 다 있어서 손을 들었을 뿐인데, 선생님이 이유도 없이 때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 그렇게 컸다. 얼마나 가졌는지, 얼마나 가지지 못했는지, 공개적으로 손을 들고,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면서 컸다. 가진 아이들이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아이들 대부분 그야말로 폭력의 시간이었다.
요즘도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을 묻는 ‘가정환경조사’가 있다며 종종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미친 짓이다. 알고 싶으면 선생들이 직접 아이들 집을 찾아다녀라!
열병식을 바라보는 시선
군인들이 줄을 맞춰 쫙쫙 다리를 뻗고, 힘찬 구령에 따라 경례한다. 우렁찬 목소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흡족하게 했다. 완벽한 대열, 흐트러짐 없는 군인들의 모습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10년 전 2015년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서도 중국은 대단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에 대한 사열에서 시진핑 주석은 "퉁즈먼 하오(동지들 안녕하시오)"라는 인사말과 함께 각 군의 경례를 받았다. 10년 전에는 어정쩡하게 ‘왼손’으로 경례하는 바람에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시진핑 주석에 대한 뒷말이 많았다. 그게 염려가 되었는지 이번엔 경례하지 않았다.

이번 열병식에 참가한 병력은 10년 전 1만 2000명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2만 2000명이다. 게다가 최첨단 무기들이 마구 쏟아졌다. 초대형 무인잠수정(XLUUV)에, 공중에선 스텔스 기능을 갖춘 무인기 '페이훙(FH)-97', 또 무엇보다 시진핑의 목에 힘을 주게 한 전략 미사일이 등장했다. 사거리 1만 5000㎞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둥펑(DF)-41' ICBM, 여기서 '둥펑'은 우리말로 동풍(東風),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미국더러 "나 이런 거 있다, 니가 쎈 거는 알고 있는데, 우리도 이런 무기가 있으니까, 덤비려면 팔 한쪽 정도는 각오해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만의 시선이 아니라 열병식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필자는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사람 죽이는 무기냐?"
필자가 정말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저렇게 주저리주저리 사람 죽이는 무기 자랑질을 해 놓고 무려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자유와 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영혼과 참혹하게 학살된 무고한 망령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이러한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게다가 시진핑 주석의 마지막 구호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정의필승! 평화필승! 인민필승!"
무기로 강함을 증명해야 하는 체제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자. 지금까지 인류의 자랑은 얼마나 땅을 많이 차지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통치하는가, 얼마나 금력(자본)을 많이 확보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21세기에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라고, 패권국이라 인정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과 경제력 때문이다.
한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가 극심히 경쟁하다가 공산주의가 확실하게 망했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을 통해 환호했다. "인류의 역사가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의 승리로 종결되었다."라는 주장이었다. 정말 그러한가?
소비에트 붕괴 후 전일적 세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전쟁과 지역 분쟁, 인종 갈등, 민족적 대립 등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신 국가자본주의와 시장자본주의의 경쟁으로 바뀌었다. 인민들의 능동적 저항으로 공산주의가 망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면, 그래서 국가자본주의와 시장자본주의로 바뀌었다면, 사실 그 지향점은 명확했다. 어느 체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것인가, 공동체 소속 구성원들의 행복을 어느 체제가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의 경쟁으로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체제가 바뀌었음에도 그 근본에는 여전히 과거의 패러다임인 ’무장력‘이 바탕이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를 위해 끊임없이 위기를 조장하고, 또 딱히 지배한다는 의식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 체제의 관성으로 유지되고 있다. 사회주의라고 사기를 치는 중국이나 그걸 보고 따라 하려고 하는 미국이나 모두 도긴개긴이다. 무기로 강함을 증명하고 이익을 최대한 취하려는 체제들이다. 열병식은 그것에서 파생된 것이다.
가난과 강함을 증명하지 않는 시대를 위하여
"Si vis pacem, para bellum(현대 라틴어 시 비스 파켐 파라 벨룸)"이라는 문구가 있다. 흔히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로 번역하고 있는데, 팍스로마 제국의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저술한 병법서 『군사학 논고(De Re Militari)』에서 유래한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격언이라고 한다. 이 문장은 평화를 위한 국방력 강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의미로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사실은 당대 로마 제국 시대에는 이런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 즉 '전쟁 억제를 위해 방어 역량을 갖춰라'는 의미가 아니라, 로마식 평화를 유지하던 당대에 '평화를 원하면 타자를 적극적으로 말살시키기 위한 전쟁을 해야 하는 것'으로 쓰였다. 방어 전쟁이 아닌 정복 전쟁을 의미했다. 더 많이 갖는다면서 포에니 전쟁, 유구르타 전쟁, 삼니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칼레도니아 족장 칼가쿠스는 이렇게 비판했다. “로마인들은 약탈, 학살, 강탈을 제국이라고 부르고, 폐허를 만들어 놓고 이를 평화(pacem)라 부른다.”
세계가 미쳐 돌아가는 지금 시대에 공교롭게도 우리 '한류'가 소프트파워로 세계를 평정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꿈을 꾼다. 마틴 루터 킹처럼 꿈을 꾼다. 가난과 강함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 춤과 노래로 자신들을 증명하는 꿈을 꾼다. 이미 그 맨 선두에 서 있는 우리 코리아의 꿈을!!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KBS 뉴스애널리스트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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