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 3차 상법 개정안이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에 자사주를 다수 보유한 재계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경영권 방어 장치 없이 자사주부터 무조건 소각해야 한다면 외부의 공세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가장 크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올해 들어 선제적인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다. 정부 방침이 워낙 강경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221건의 자사주 소각이 공시됐다. 이는 지난해 누적 건수보다 2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소각을 공시한 기업의 수도 지난 8월까지 206곳으로 전년 동기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1~8월 자사주 소각 규모(5619억원)는 이미 지난해(4809억원)를 넘어섰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주주가치 제고 등을 위해 1년간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중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지난 2월 소각했다. LG그룹은 1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추진 중이다. 올해에만 5000억원을 소각했다. 이외에도 지난달에만 LS(1700억원), HMM(2조1400억원), KT&G(3000억원) 등이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안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을 옥죄는 게 아니라, 부동산 악덕 기업 경영진이나 일부 지배주주를 압박하는 것"이라며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경제계에선 의무소각 제도가 가져올 여러 부작용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의 문제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결국 기업의 자기주식 취득 유인이 약화돼, 결과적으로 취득에 따른 주가 부양 효과가 사라져 주주권익 제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주식 취득 후 1~5일간의 단기 주가수익률은 시장 대비 1~3.8%p 높고, 자기주식 취득 공시 이후 6개월, 1년의 장기수익률도 시장 대비 각각 11.2~19.66%p, 16.4~47.91%p 높아 주가 부양 효과가 확인됐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소각에 의한 단발적 주가 상승 기대에 매몰될 경우, 오히려 장기적으로 기업의 반복적인 자기주식 취득을 통한 주가 부양 효과를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주요 산업 분야의 구조조정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합병 등 특정 목적으로 취득한 자기주식까지 소각하면 자본이 감소해 업력별 고유사업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우려에서다.
재계를 가장 압박하는 것은 사실상 유일한 방어수단인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면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전제로 자기주식 소각 의무보다는 처분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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