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대통령 예능 논란' 추석 민심의 향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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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과거에는 추석이나 설 연휴가 끝나면 여론이 요동치곤 했다. 정치 정보의 흐름이 제한적이었던 시절, 명절처럼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각자 접한 정치 정보를 교환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경향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연령층조차도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정치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직장 생활로 인해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젊은 층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명절을 계기로 굳이 정치 정보를 주고받을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더불어 요즘에는.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도 정치 이야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불문율처럼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괜히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가 가족 간 갈등이나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명절을 계기로 여론이 크게 요동치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럼에도 모든 국민이 정치적 고관여층은 아니기에, 여전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여론에 일정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존재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다수 유권자는 명절 모임에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가족구성원들의 의견과 정보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추석 역시 여론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추석 민심은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지 궁금해진다. 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추석 밥상 위에 어떤 정치적 주제가 올랐는지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추석의 주요 화두는 아마도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었을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통령 부부가 예능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는 이번처럼 큰 관심을 끌기 어렵다. 우리 사회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는 진영에 따라 시청 여부 자체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해당 프로그램은 케이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8%를 넘겼다. 여기에 OTT 플랫폼에서의 시청까지 포함하면 실제 시청률은 이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로 케이블 채널과 지상파 채널의 시청률을 비교할 때는, 케이블 시청률에 일정 비율을 가산해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시청률이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높은 시청률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 때문인지, 아니면 녹화 시점과 관련한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녹화 시점을 둘러싼 논란이 시청률 상승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이재명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대통령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보다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프로그램 녹화 시점에 대한 논란은 타당한 것인지 따져 봐야 한다.

국민의힘은 "냉장고를 부탁해보다 국민을 부탁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국가 전산망이 마비된 시기에 대통령은 예능에서 '이재명 피자'를 먹으며 웃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48시간 행적은 거짓이었다. 거짓 위에 또 거짓을 덮다가 결국 지난 4일 녹화 사실을 시인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로 인해 민주당으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반면 민주당은 "해당 출연은 K푸드를 포함한 K컬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정부 의지의 표현"이라고 반박하며 "이 대통령은 유엔 순방에서 귀국한 26일 저녁부터 밤새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고, 이후 27일 오후 화재가 완진된 상황에서 28일 오전에는 비상대책회의, 오후에는 중대본 회의를 주재했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양측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추석이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명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심을 앞에 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립이 생산적인지는 의문이다. 우선 국민의힘의 주장에는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시에 할 수 있는 조치와 역할은 모두 수행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의 이런 비판은 여론의 호응을 얻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민주당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도 어렵다. 대통령이 화재 대응과 관련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미진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진한 부분이란 바로 국민의 불안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다. 녹화 시점 당시만 하더라도, 정부 기능의 정상화 시점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공무원들은 밤을 새워가며 정상화를 위해 사태를 수습하던 시기였다. 국민들 역시 초유의 사태에 매우 불안감을 느끼던 때였다. 이런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도 국민적 불안에 ‘공감’한다는 차원에서 녹화를 취소하거나 연기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의힘의 공격으로 인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석 이후 하락할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해진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여론조사들의 결과를 토대로 판단하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해도 50%대 수준이고, 상승해도 60%대 초중반을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나타나는 이유는 국민의힘이 여전히 합리적인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고, 여권이 씌운 '내란 프레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대통령의 경우, 과거부터 존재했던 비호감도 때문에 지지율 상승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내란 정국의 유지 덕분에 큰 폭의 지지율 하락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추석 민심을 두고 여야가 벌이는 한판 승부가 여론 추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야가 모두 명심해야 할 측면은, 합리적이고 여론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측이 궁극적으로 민심을 얻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여야 양측 중 누가 먼저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며 ‘진짜 정치’를 할 것인가가 민심을 두고 벌이는 승부에서 최종 승자를 결정할 것이라는 말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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