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긴급명령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비판이 현직 연방판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이들은 대법원의 무리한 개입이 사법부 전반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현직 연방판사 6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2%인 47명이 연방대법원의 긴급명령권 사용이 부적절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적절했다고 평가한 판사는 12명이었으며, 6명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긴급명령은 연방대법원이 시급한 사안을 정식 심리나 공개 변론 없이 판단해 하급심 판결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시키거나 유지하도록 내리는 조치다. 원래는 예외적으로 사용되는 권한이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주요 정책 결정에 반복적으로 동원됐다.
응답한 판사 가운데 42명은 대법원의 이런 조치가 일반 국민의 사법부 신뢰에 어느 정도 혹은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일부 판사는 이를 "극도로 사기를 꺾는 조치"라고 비판했고, 현재 상황을 "사법 위기의 중심"이라고 표현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정책과 관련해 약 20건의 긴급명령을 내렸으며, 이 가운데 최소 7건은 별도의 이유나 설명 없이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이민자 수만 명 추방, 트랜스젠더 군인 강제 전역, 연방 공무원이 대량 해고 됐으며 연방 지출이 대폭 삭감됐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65명의 판사 중 37명은 민주당 대통령이 임명했고,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는 28명이었다. 이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판사는 10명이 포함돼 있다.
NYT는 “응답한 판사 수가 전체 연방판사 규모인 1000명 이상에 비해 소수에 불과할 수 있으나, 현직 판사 수십 명이 대법원의 행동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지낸 전 연방판사 J. 마이클 루티그는 “이처럼 다수의 현직 판사들이 대법원 운영에 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일은 과거에 유례를 찾기 어렵다”며 이번 설문 결과가 가진 상징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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