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공급망 심장을 쥔 자 …희토류 패권의 지정학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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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⑩


경주 APEC에서 미국과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정상회담을 했다. 이런 자리인 만큼 세계도 지난 4월부터 두 나라가 진행한 무역 협상이 정상 차원에서 모종의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이들도 이런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한 것이 사실이다. APEC 회의 직전에 개최된 ASEAN 정상회의에서도 이들의 협상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국은 지난 10월 9일에 발표한 희토류 수출 규제의 유예를, 미국은 이의 보복 조치로 채택한 100% 관세의 잠정 보류를 결정했다. 이번 APEC회의에서 미·중은 무역 합의보다 협상의 방향과 범위에 관한 인식 공유를 확인하는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일단 양국간 고조됐던 갈등은 해소 국면에 들어설 전망이다. 

지난 4월부터 5차례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미·중 양국의 입장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엇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가? 치열하다 못해 이들은 양보 없는 ‘치킨게임’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월 미국이 상호 관세율 145%를 중국산 수입 제품에 부과하겠다고 나서자 중국은 희토류 카드와 125% 관세율로 맞섰다. 비록 두 달 후 미·중 2차 무역 협상에서 이 모든 것의 유예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9월 들어 미국은 또 다른 제재를 중국에 가했다. 그리고 그다음 달 예정된 4차 무역 협상 이전에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미국과 중국이 무엇을 위해 이런 파국에 치달을 정도의 압박을 서로에게 가하는 이유를 알아갈 필요가 있겠다. 그래야 우리가 실용 외교에서든, 국익 중심의 외교에서든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겠다.

이런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이유와 목적은 한 가지다. 상대방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우위를 유지·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을 초월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추구하는 국정 목표, 즉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전 세계에 입증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중국은 이런 목표를 일부 달성했다. 2009년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이듬해 세계 2위의 일본을 제쳤다. 이제 남은 유일한 상대는 미국이다.

이를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부임한 후 2013년에 ‘중국몽’ ‘인류운명공동체’와 ‘일대일로’를 발표했다. 2015년에는 세계 제조업의 80%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힌 <중국제조 2025>를 제정했다. 2020년에는 2035년까지 세계 과학기술의 표준 국가가 되려는 계획, 즉 <중국표준 2035>를 공개했다. 지난 10월 20일 개최된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국민경제·사회 발전 15차 5개년 규획' 건의안을 통과시키며 이 같은 방침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4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은 “원천 혁신과 핵심 기술 공략을 강화하고 과학·기술 혁신과 산업 혁신의 심도 있는 융합을 추동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과학기술 자립·자강 수준을 대폭 향상하는 원대한 목표를 선언한 것이다. 중국이 제조·우주·네트워크·품질·교통 등 5개 분야에서 강국이 되는, 이른바 ‘5대 강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표출했다. 더 나아가 1인당 GDP를 중등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결의 또한 공개했다.

미국 역시 트럼프 1기(2017~2021) 후반부부터 제조업의 부활을 추진했다. 그는 당시 ‘리쇼링(reshoring)’ 전략을 내세워 해외의 미국 생산 기지의 귀환을 꾀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2021~2025)은 이런 그의 전략을 ‘우호적인 리쇼링(friendly-shoring)’으로 재포장하면서 동맹과 우방의 제조업 생산 기지 유치로 목표를 확대했다. 트럼프 2기는 미국 기업을 포함한 동맹과 우방의 미국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주문하는 전략, 즉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이들의 투자를 미국은 관세 정책으로 압박하며 얻어내려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진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하는 중이다.

현재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우리나라의 3500억 달러 투자를 제외한 합의 투자 누적 규모가 8.9조 달러에 달했다고 자부하는 문구가 걸려 있다. 이처럼 미·중 양국은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조업의 자강 정책 실현에 집중하고 있다. 견고한 제조업 기반 없이 지배적인 위치와 위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근거한, 현실적인 정책적 선택의 결과이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 제조업의 부실함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코로나 사태 때 마스크를 포함한 백신이나 치료제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와 소재를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구조에 참담했다.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탄약과 포탄을 자급자족할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중국이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인식은 올 한 해 진행한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상정한 의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중국이 고급 사양의 반도체의 수출 규제, 반도체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미국의 대중 기술 이전 규제, 중국의 미국 기업 투자 규제 등의 완화와 관세 감축를 주요 의제로 삼고 있는 이유다. 지금까지 중국의 의제는 관철될 기미조차 없었다.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는 이를 수용할 의사마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답답한 심정을 표출이라도 하듯 중국은 지난 10월 9일 상무부를 통해 희토류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의 희토류 카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미국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중국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2025년 상무부 공고> 7건 중 5건이 오는 11월 8일 발효되고 12월 1일 시행되는 계획을 담고 있다. 이 중 공고 제55호, 57호, 58호 등 3건이 희토류 수출 통제와 관련됐다. 다른 3건은 희토류 생산 관련 기술을 대상으로 한 규제 조치다. 제61호는 희토류 품목의 역외 통제로 해외에서 중국산 희토류를 이용하여 이중 용도 제품(민군 호환 가능 제품)을 생산한 기업과 정부에 대한 제재안이다. 중국은 이 같은 조치를 발표함으로써 경주 APEC 회의 이후에도 협상 여지가 남았음을 알린 것이다.

문제는 미·중 간 희토류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튄 데 있다. 이를 암시하는 경고성 메시지가 작년에 이미 있었다. 2024년 11월 서울에서 중국 상무부는 우리 기업을 대상으로 희토류 정책 설명회를 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17일 우리 정부에 공문을 보내 자국의 핵심 금속이 포함된 제품을 미국 군수업체에 수출할 경우 보복 조치가 따를 것이라고 우리 기업에 엄중히 경고했다.

중국 측은 이러한 공문을 우리의 변압기 제조업체 두 곳에도 동시에 보냈다. 중국산 중희토류 금속이 포함된 전력 장비를 미국 군수업체나 미국에 수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나 기타 규제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미 동맹을 통해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한 제품의 대미 우회 공급을 우려한 중국의 입장이 역력하게 반영된 대목이다. 이런 중국의 경고는 현실화됐다. 지난 14일 ‘반외국 제재법’에 근거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인 한화 쉬핑, 한화 필리 조선소, 한화 오션 USA 인터내셔널, 한화 쉬핑 홀딩스, HS USA 홀딩스 등 5곳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중국의 조치는 우리 조선업을 견제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미국의 동맹을 이용해 미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려는 조치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번 APEC 주최국인 우리 정부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실용 외교든 국익 중심 외교의 관점에서 정부는 ASEAN 정상회의와 경주 APEC 회의를 미·중 무역 전쟁으로 산적한 경제·통상 현안 과제의 실마리를 전방위적으로 찾는 기회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기회를 그렇게 활용할 생각이 거의 없어 보였다. 정부의 관심이 특정 국가에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정부는 7월 한·미 정상회담 이전부터 APEC에서 북·미 회담 가능성을 선전했고, 9월에는 이의 정지 작업을 지시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나머지 참여국 19개국에 관심이 없는 정황은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도 드러났다. 총회나 트럼프 대통령의 환영 만찬에서 APEC 회의 의장국으로서 외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실의 말처럼 트럼프와 ‘단시간’ 조우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최소한 APEC 참석 예정 정상과 외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절한 것이 문제였다.

이도 그러할 것이 우리의 희토류 해외 의존도는 100%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돌파구 중 하나로 수급시장의 다변화가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현실은 희토류 생산국 대부분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탄자니아, 나이지리아 등)나 중국과 강한 연대를 가진 나라(BRICS, 베트남, 미얀마 등)들이다. 우리 외교의 취약점이 가장 강한 영역이다. 냉전 이후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홀대했다. 중국과 연대가 강한 나라 대부분은 사회주의 국가 출신이다. 우리와의 관계가 돈독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자원 외교나 광물 외교를 하기에 운동장은 이미 기울어졌다.

말레이시아 ASEAN 정상회의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잘만 이용하면 우리에겐 극복의 단초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글로벌 사우스를 제외한 희토류 생산국 정상 대부분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ASEAN 정상회의에서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등과 정상회의를 통해 희토류 협력 성명을 도출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겠다. 앞으로 기회는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G20 정상회의가 오는 11월 22일 개최될 예정이다. 희토류 관련 우리 국익의 극대화하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마지막 장이 될 것이다. 희토류 공급망의 다변화를 위한 우리의 외교적 노력을 남아공 G20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하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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