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고(故) 김계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재심이 다음 달 열린다. 군사정권 시기 비상재판체에서 진행된 내란 관련 재판의 절차와 법적 정당성이 45년 만에 다시 법정의 검증대에 오른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김성수)는 오는 12월 24일 김 전 실장의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 중요임무종사 미수 공모 혐의 재심 첫 공판기일을 연다.
김 전 실장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에게 피살될 당시, 궁정동 안가 현장에 있었다. 사건 직후 군사정권은 ‘국헌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김재규·김계원 등 관련자들을 계엄사령부 비상군법회의에 회부했다.
김 전 실장은 같은 해 12월 6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뒤 1988년 특별사면·복권됐으며, 2016년 별세했다.
계엄시절 ‘군사법정’…사법권이 통제된 재판
김 전 실장의 재판은 통상 법원이 아닌, 계엄사령부 산하 군사법정에서 진행됐다. 당시 군법회의는 군 지휘체계의 통제 아래 운영되었고, 판사와 검찰관 모두 현역 장교가 겸임했다.
법관 자격이 없는 군인이 재판을 주재했고, 군 지휘관이 사실상 판결을 승인하는 구조였다. 피고인의 진술은 군 보안부대의 수사보고에 의존했고, 변호인에게는 기록 열람권조차 제한됐다.
헌법상 보장된 ‘사법권의 독립’이 계엄 포고령 아래 사실상 정지된 셈이었다. 군사정권은 사건 발생 불과 두 달 만에 사형을 확정하며 “국가 안정을 위한 신속한 단죄”를 내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적법절차의 원칙과 방어권 보장은 형식에 그쳤다.
김 전 실장은 생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상태에서 진행됐다”며 “진술을 번복하면 협박이 뒤따랐다”고 말했다. 유족은 2017년 “당시 수사와 재판은 군 통제 아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졌으며,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 절차로 보기 어렵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 8월 “군사재판의 적법성과 절차의 실체적 진실 여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법조계는 이번 재심이 단순한 개인 사건의 재검토를 넘어, 1970년대 비상체제하 군사법정이 행사한 준사법권의 한계를 검증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한 중견 법조인은 “당시 군법회의는 행정부의 명령체계 아래 존재한 ‘비상재판기구’에 가까웠다”며 “재심은 헌법적 질서 회복의 연속선상에서 이뤄지는 절차적 복원”이라고 평가했다.
군사재판 재검증 흐름 속 ‘10·26’ 재심
김 전 실장의 재심은 현재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에서 진행 중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재심과 병행된다. 두 재심은 동일한 사건 맥락에서, 당시 군사법정의 구성·절차·증거 판단이 헌법 원칙에 부합했는지를 다투고 있다.
최근 사법부는 군사정권기 비상재판에 대한 재검증을 잇달아 진행해 왔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2007년 무죄 확정), ‘부마항쟁 사건’(2020년 무죄 확정), ‘유신헌법 반대 시국사건’(2023년 재심 개시 결정) 등에서 공통적으로 “계엄하의 군사재판은 독립된 법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복됐다.
김 전 실장의 재심에서도 재판부는 수사보고서, 군사재판 기록, 당시 피의자 진술의 증거능력을 중심으로 ‘군사법정이 과연 재판기관으로서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었는가’를 집중적으로 따질 것으로 보인다. 형사재판의 최소 요건인 증거의 자발성·적법성, 변호인의 조력권 보장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당시의 유죄판결은 ‘위헌적 절차’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피고인은 이미 사망했지만, 재심은 여전히 법적·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재심법상 ‘형의 실효’가 목적이 아니라, 당시 판결이 헌법과 절차적 정의에 부합했는지를 규명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군사재판의 구조적 한계를 명시적으로 지적할 경우, 이번 재심은 과거 비상재판의 적법성을 사법적으로 재검증하는 과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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