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지난 9월 말 카카오톡이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에 나섰다. 인스타그램에서 이용자들이 각종 게시물을 올리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것처럼 카톡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카톡 체류 시간을 늘리겠다는 전략이었다. 개편에 따른 광고 매출 증대가 기대되면서 증권가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용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개편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비판이 들끓는 가운데 주가도 폭락해 단 며칠 만에 시가총액 3조 4천억원이 증발했다. 견디다 못한 카카오톡 경영진은 공개 사과와 함께 일부 기능과 친구 목록 방식을 개편 이전 상태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SNS)는 이용자와 이용자를 연결해 인간관계를 확장시켜 준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내 친구와 연결되어 있다면 설령 나와 전혀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당사자들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나와 A를 연결시켜 준다. 여기서 '연결'된다는 것은 SNS 상에서 하는 제반 활동을 상호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과정을 몇 단계 거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SNS 친구가 급속히 늘어난다. 물론 연결이 쉬운 만큼 손절도 쉽다. 1967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세상의 그 누구든 최대 여섯 다리만 건너면 나와 연결될 수 있다는 '6단계 분리 이론'을 발표했는데, 이 법칙은 인터넷과 SNS에 의해서 3.5단계로 좁혀졌다. 대중의 관심에 늘 목말라 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에게 SNS보다 더 손쉽고 효율적인 팬덤 확보 수단은 없을 것이다.
반면에 카카오톡은 개인끼리 사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매체로서 기능해 왔다. 보편적으로 이용자들은 카카오톡을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폐쇄적 통신서비스로 인식한다. 카카오톡의 정체성은 SNS가 아니라 '무료 메신저'다.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금번 카카오톡 개편의 핵심은 기존 메신저 위주의 서비스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노출시키는 체류형 피드 서비스로 변화하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한마디로 SNS가 되겠다는 거다. 이에 따라 첫 화면이 인스타그램처럼 격자(格子)형 피드로 바뀌면서 이용자들이 올린 게시물이 화면을 채우고 '가나다’ 순으로 되어 있던 친구 목록이 사라졌다.
카카오톡에서의 친구는 말이 '친구'지 이 '친구 목록'에는 가족은 물론이고 직장 상사와 업무상 알고 지내는 사람들, 그저 잠시 스치고 지나간 인연이라거나 서로의 소식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헤어진 남친이나 여친이 있을 수도 있다. SNS와 달리 자발적 친구 맺기와는 거리가 멀고 손절도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 금번 개편에 의해 이런 카톡 친구들이 누군가와 공유하고자 올렸을 사진들을 나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딱히 그들이 원한 바도 아닐 것이고 나의 의사와도 무관하다. 이는 내가 누군가와 공유하고자 올린 게시물도 불특정 다수의 카톡 친구들이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카오톡은 더 이상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서비스가 아닌 것이다. 문제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송신자로서 전면 공개하고 싶은 것도 있고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싶은 것도 있다. '표현할 권리와 숨길 권리'이다. 수신자로서도 알고 싶은 게 있고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볼 권리와 보지 않을 권리'다. 금번 카카오톡 개편은 이와 같은 이용자의 권리를 무시했다. 친구 목록에는 있지만 친구는 아닌 사람들과의 '불편한 연결'을 강제함으로써 뭐든 올리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대다수 이용자들은 이런 변화가 몹시 당황스럽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게시물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아예 친구 탭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던가 “내가 올린 게시물이 누군가의 카톡에 나올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절대로 프로필 사진을 바꾸지 않고 있다”, “카카오 직원들은 직장 상사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보고 싶냐”는 이용자들의 볼멘 반응이 역풍을 부른 이번 개편의 문제점을 웅변한다.
북송(北宋) 초기, 인물화에 뛰어났던 화가 손지미(孫知微)가 청뚜(成都)에 있는 사찰 수녕사(壽寧寺)의 부탁을 받아 '구요성군도(九曜星君圖)'를 그리게 되었다. 일월화수목금토에 2신(神)이 추가된 ‘구요성군’은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중국 민간신앙에서 널리 숭배하던 아홉 신이다. 그림의 기본작업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착색만 남은 상태에서 마침 찾아온 친구와 출타하면서 제자들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잔꾀가 많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한 제자가 그림을 한참 바라보더니 스승께서 물병을 그릴 때면 항상 꽃 한 송이를 함께 그리셨는데 급히 나가시느라 빼먹으신 것 같다며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수요성군 옆에 시립한 동자가 들고 있는 물병 위에 붉은 연꽃 한 송이를 그려 넣었다. 나중에 돌아와 그림을 점검하던 손지미가 물병 위의 연꽃을 발견하고는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대체 누가 이런 바보짓을 한 거냐. 수요성군의 물병에 꽃을 그려 넣다니, 너희가 재주를 피우려다 그림을 망쳐버렸구나.” 동자가 들고 있는 물병은 수요성군이 물의 요괴를 제압하는 진요병(鎭妖甁)이었다. 여기에 꽃이 그려지는 바람에 그만 장식용 꽃병이 되고 말았다.
북송 중기에 활동한 문인 황정견(黃庭堅)은 평생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손지미의 일화에서 착안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 '졸헌송(拙軒頌)'에는 '졸(拙)의 미학'에 대한 그의 사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다가 도리어 서툰 결과를 낳거나 일을 망치는 경우를 이르는 성어 ‘농교성졸(弄巧成拙)’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졸헌송을 감상해 보자.
覓巧了不可,得拙從何來
打破沙盆一問,狂子因此眼開
弄巧成拙,為蛇畫足
何況頭上安頭,屋下蓋屋
畢竟巧者有餘,拙者不足
찾으려던 공교함 찾지 못하고
얻어낸 졸렬함 어디서 왔는가
사기 동이 깨트리고 한번 물으니
광인은 그제야 눈을 떴다네
기교를 부리다 망치는 것은
뱀을 그리면서 다리를 그리는 격이네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고
집 아래에 또 집을 덧씌우니
결국 교묘함은 지나치고 소박함은 모자라네.
카카오는 정체된 메신저 역할에 새로운 트렌드(인스타그램식 피드, 숏폼 콘텐츠 등)를 도입하여 앱의 사용성(UX: User Experience)과 체류 시간을 높이고자 했다. 이는 기존의 단순한 메신저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넘어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하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동시에 광고 노출에 따른 수입 증대도 기대했을 테고. 그러나 국민 메신저라 불릴 만큼 생활 깊숙이 스며든 서비스이기에 그 변화는 신중해야 했다. 이용자들은 공사(公私) 영역이 섞인 연락처 기반의 메신저에 사생활 노출 위험이 있는 SNS 피드 형태가 강제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꼈다. 결국, 앱의 사용성과 수익성을 높이려고 기교를 부린 개편(弄巧)이 이용자의 불만 폭발과 주가 폭락이라는 나쁜 결과(成拙)를 낳았다. 잘해보려다 그대로 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왔으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며 농교성졸의 전형이다. '더 좋은, 더 트렌디한 앱'을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서두르다가 오히려 메신저 본연의 편의성과 익숙함을 해친 게 이번 카카오톡 개편 논란의 본질이다.
"고객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한때 보이스 피싱 사기범들이 쓰던 단골 멘트가 저랬다. 황당한 내용의 문자를 불쑥 보내 겁을 준 후 전화를 걸어와 저 멘트를 날리고는 금융 정보를 빼내 돈을 갈취하는 수법에 당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당시 KBS 개그콘서트에서 개그 소재로 삼아 희화화했을 만큼 한국어 억양이 독특한 조선족이 내뱉은 멘트는 장안의 화제였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카카오톡을 연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게시물이 주루룩 올라와 있다. 보이스 피싱 사기라도 당한 듯 당황스럽다. 이용자의 불편을 외면한 변화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갉아먹는다. 개편 이전으로 복원하겠다고 한 카카오 측의 약속은 언제쯤이나 실현될까? 카카오에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던 '선물하기' 거래액이 개편 이후 한 달 만에 100억 원 이상 감소했다는 최근 보도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음을 말해 준다. 시간은 카카오의 편이 아닌 것 같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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