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54) 스승 뛰어넘기 - 청출어람(青出於藍)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승부'는 바둑 황제로 불리던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대결을 다룬 작품이다. 바둑을 둘 줄 몰라도,  설령 두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해도 사제지간에 벌어지는 승부와 그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 그리고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바둑 영화라기보다는 인생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1989년에 있었던 제1회 잉창치배(應昌期杯) 세계바둑대회 최종국 대국과 카퍼레이드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에도 막부 시절부터 바둑을 국가정책으로 장려하며 전문기사들을 양성한 일본은 20세기에 들어와 근대 바둑의 종주국이 되었다. 일본바둑은 세계의 표준이었다. 그런 일본에 늘 한 수 지고 들어가고 바둑의 발상지 중국에 괜시리 주눅들던 한국바둑의 위상을 단번에 드높인 게 조훈현의 잉창치배  우승이다. 이 대회는 대만 재벌 잉창치가 '철의 수문장'이라 불리며 일본의 정상급 기사들을 연파하던 중국의 섭위평 9단을 앞세워 바둑 종주국의 지위를 되찾고자 만든 최초의 국제 기전이다. 4년마다 열리기에 바둑올림픽이라고 불린다. 상금도 제일 많다. 

잉창치의 바람대로 섭위평 9단이 결승에 올라왔고 상대는 단기필마로 출전한 조훈현이었다. 한국은 달랑 조훈현만 출전이 허용되는 변방의 설움을 감수해야 했다. 5번기로 치러진 결승이 2:2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 가운데 세계 바둑의 패권을 가르는 운명의 최종 5국에서 조훈현이 섭위평을 누르고 당당히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대회가 열린 싱가포르에서 조훈현이 귀국한 날 김포공항에서 시내까지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로 온 나라가 열광했다. 바둑기사가 카퍼레이드를 한 건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다. 조훈현의 잉창치배 우승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올라서는 신호탄이었다. 감독이 잉창치배 결승국과 카퍼레이드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국내 모든 기전을 석권한 전관왕으로 군림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조훈현은 잉창치배 우승으로 반상의 승부사 이력에 정점을 찍는다. 허나 달도 차면 기울기 마련이던가. 얄궂게도 이때부터 조훈현 바둑 인생의 시련이 시작될 줄 누가 알았으랴. 조훈현이 잉창치배 우승 4년 전 내제자로 받아들인 바둑 신동 이창호는 타고난 천재성에 스승의 장점을 흡수하며 무섭게 성장한다. 스승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바둑을 완성한 이창호는 15살이 된 1990년부터 파죽지세로 스승의 타이틀을 하나씩 빼앗기 시작하고 마침내 조훈현은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한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하산의 고통은 길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치고 올라온 제자에게 모든 것을 잃은 참담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망연자실하던 조훈현은 시련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숙해진다. 제자에게도 배울 수 있음을, 자신도 언제든 질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하루에 몇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등산으로 체력을 보충하며 심기일전, 이제는 일인자가 된 제자에게 도전하는 심정으로 대국에 임하는 승부사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재기에 성공한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를 사상적으로 지배한 유학(儒學)을 달리 이르는 말이 공맹학(孔孟學)이다. 이는 유학이 공자와 맹자가 주도한 학문이었음을 의미한다. 어려운 문자를 써가며 유식한 체함을 비꼬거나, 실천은 없이 헛된 이론만을 일삼을 때 흔히 '공자 왈 맹자 왈 한다'고 한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라던가 '맹자 집 개가 맹자 왈 한다'는 속담도 있다. 옛부터 우리사회도 공자와 맹자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그런 공자와 맹자 못지않게 중국 사상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 순자(荀子)다. 전국시대 말기에 활동한 순자는 유가(儒家)의 사상을 기반으로 자신의 학설을 정립했다. 순자는 유가의 계승자이면서 동시에 비판자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현실주의자였다. 이상적 도덕론에 치중한 맹자에 대한 비판을 신랄하게 한 대가로 유학이 도그마로 발전한 후대에 한때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으나 근대에 들어와 전국시대 최후의 대유(大儒)로 재평가되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채택한 통치이념은 유가가 아니라 법가(法家)였다. 순자는 도덕보다 법을 중시하는 법가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법가 사상을 완성한 한비자와 시황제의 천하통일을 도운 승상 이사 모두 순자의 문하생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되는 성악설의 주창자로만 기억된다. 유가의 틀에 갇히지 않고 제자백가 사상을 집대성하여 '동양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불리는 순자로서는 꽤 억울할 것 같다. 

순자는 누구보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교육사상가이기도 했다. 순자의 사상과 학설을 담은 책 《순자》에는 총 32편이 현존한다. 공자의 어록 《논어》가 '학이(學而)'로 시작하듯 순자도 학문을 권장하는 내용인 '권학(勸學)'을 책 맨 앞에 두었다. '권학'에는 교육에 대한 순자의 열정과 확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학문은 멈춰서는 안 된다. 푸른 물감은 쪽이라는 풀에서 얻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青取之於藍 而青於藍),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冰水為之 而寒於水)." 사람이 꾸준히 배우고 닦으면 스승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역설한 '권학'의 이 첫 문장에서 성어 '청출어람(青出於藍)'이 나왔다.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군자삼락(君子三樂)의 하나라고 했다. 그렇게 얻은 영재가 가르친 스승을 뛰어넘는 청출어람은 스승의 보람인 동시에 제자가 스승에게 바치는 최고의 보은이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는 청출어람의 전형인 동시에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극적이면서도 이례적이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을 시점에는 스승이 은퇴를 앞두었거나 이미 했기에 경쟁관계가 아닌 경우가 일반적이다. 조훈현은 현역이었다. 그것도 지는 해가 아니라 한창 중천에 떠 있는 해였다. 스승과 제자가 정상을 놓고 진검승부를 겨루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제자에 의해서 떠밀리듯 정상에서 내려오게 된 조훈현의 좌절감은 컸을 것이고 이창호의 인간적 고뇌는 깊었을 것이다. 허나 그 과정에서 조훈현은 스승의 품격을 잃지 않았고 이창호는 제자의 겸허함을 저버리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의 치열한 승부는 바둑계에 큰 활력소가 되었고 한국바둑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이 빚어낸 청출어람 사례는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뜨겁게 장식하며 전설이 되었다. 스승과 제자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영화 '승부'도 흥행에 성공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다. AI 시대의 도래는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청출어람이 앞으로도 가능할 것인가"라는. 2016년 구글이 개발한 AI 알파고와 당대 최고수 이세돌이 격돌했다. 다섯 판을 겨룬 이 세기의 대결에서 이세돌이 1:4로 참패했다. 인간을 압도하는 알파고의 실력에 세계가 경악했음은 물론이다. 이른바 '알파고 쇼크'다. 2017년 알파고는 이세돌과 세계 정상을 다투던 중국의 커제마저 3:0으로 완파했다. 그 이후 AI는 바둑의 신이라 불리며 바둑계의 스승이 되었다. 모든 프로기사가 AI로 기량을 연마하고 예습하고 복기한다. AI가 가공할 계산력으로 최적의 확률을 따지며 점지하는 한 수 한 수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정답으로 공인받는다.

AI는 버전이 업그레이드될 뿐 은퇴도 사멸도 없다. 이런 스승을 인간 제자가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지적, 육체적 활동 영역을 무서운 기세로 잠식하고 있는 AI로 인해 전통적 의미의 사제 관계는 점차 소멸되고 청출어람이란 단어도 사어(死語)화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가 장강명이 변해버린 바둑계 풍경을 '먼저 온 미래'라고 한 건 탁월한 작명이었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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