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52) 글자 하나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 - 일자천금(一字千金)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이백여 년간 이어진 약육강식의 쟁투 끝에 살아남은 일곱 나라, 이른바 전국칠웅(戰國七雄)이 각축을 벌이던 전국시대 말엽, 각국의 제후들은 앞다투어 천하의 인재들을 끌어모으며 세를 과시했다. 식객이라 불린 이들 인재는 세력 있고 명망이 높은 대갓집에 얹혀 지내면서 문객 노릇을 했다. 식객의 수가 세력가의 영향력과 덕망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한 시대였다 

당대의 최강국 진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여불위(呂不韋)였다. 그는 본시 여러 나라를 오가며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모은 거상(巨商)이었다. 진나라 태자 안국군의 둘째 아들 자초가 조나라에 볼모로 보내져 고초를 겪고 있던 시절, 우연히 자초를 만난 여불위는 곧바로 그에게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상품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는 장사꾼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서자인데다가 아버지 안국군의 사랑도 받지 못하던 자초가 여불위의 치밀한 계책과 전폭적인 후원에 힘입어 진나라의 태자가 된 후 왕위에 오르자 여불위는 일약 진나라의 승상(국무총리에 해당) 자리를 꿰찬다. 

자초 즉 장양왕이 즉위 3년 만에 죽고 그의 아들 정(政, 훗날의 진시황)이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정은 여불위를 존중해 승상보다 한 단계 위인 상국(相國)으로 삼고 아버지와 다름없다고 해서 중부(仲父)라고 불렀다.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면서 부와 권력을 양손에 거머쥔 여불위의 위세가 가히 하늘을 찔렀다. 자초라는 저평가된 가치주를 사서 초대박을 친 여불위의 전략적 투자는 성어 '기화가거(奇貨可居, 진기한 물건은 사재기할 만하다)'의 유래가 되었다.

비록 군사적으로는 최강국 지위를 굳혔지만 진나라는 중원에서 한참 떨어진 대륙 서쪽 변방의 문화적 후진국이었다. 여불위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적극적으로 인재를 불러들이고 후대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거느린 식객 수가 3,000명에 달했다. 순자를 비롯하여 담론에 능한 논객들이 많았던 시대라 나라마다 각종 저작 붐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여불위도 자신의 식객들에게 제각기 보고 듣고 아는 바를 저술하게 한 후 이를 모아 책으로 만드니 총 26권에 20만 자가 넘었다. 여불위는 이 책이 천지만물과 고금의 일들을 모두 망라했다고 자부하며 공자의 《춘추》에 견줄 만하다는 의미에서 여씨의 춘추, 즉《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이름지었다. 

여불위의 바람대로《여씨춘추》는 진나라를 대표하는 저작이 되었다. 여불위는 수도 함양의 성문 앞에 책을 진열해 놓고는 "여기에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有能增損一字者, 予千金)"고 선포했다. '글자 하나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의 성어 '일자천금(一字千金)'이 그렇게 생겨났다. 엄청난 상금의 효과는 컸다. 책에 대한 소문은 빛의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여불위 자신의 명성도 진나라의 위상도 수직상승했다. 타고난 장사꾼 여불위는 홍보마케팅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누가 상금을 받아갔다는 기록은 없다. 책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아서였을까? 20만 자가 넘는 책에서 흠잡힐 만한 글자가 한 자도 없었을까? 그보다는 어느 누구도 감히 한 글자라도 보태거나 뺄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에 시비를 건다는 것은 곧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불위는 그 점까지 계산에 넣고 일자천금 이벤트를 벌이지 않았을까?

그런 연유로 해서 '일자천금'의 원뜻은 '권력자의 책을 누가 감히 고칠 수 있는가'였다. 말이나 글의 무게를 극적으로 드러낼 때  쓰이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표현이 나오게 된 맥락이 생략된 채 사용되다가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본래의 뜻과 전혀 다른 뜻이 된 것이다. '죽마고우', '천고마비' 등이 그러하듯. 출전은 《사기•여불위열전》이다. 

이달 10일 정치권으로부터 뜻밖의 낭보가 들려왔다. 3대 특검법에 대한 야당의 수정 요구를 민주당이 수용하고 그 대신 국민의힘은 금감위 설치 관련 법안 처리에 협조하기로 합의를 했다는 거다. 양당 원내대표가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합의안을 공동 발표했다. 끝없는 정쟁에 넌더리가 난 국민의 얼굴도 모처럼 환하게 펴졌다. 사사건건 대립하며 싸움질만 하더니 이제 협치 좀 하려나 보다 했다. 그랬더니 웬걸,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이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협의'였을 뿐 '합의'한 적 없다는 거다. '바이든-날리면' 소동에 이어 또다시 전국민이 듣기 테스트를 해야 할 판이다. 합의안 공동 발표 14시간 뒤 끝내 민주당은 협상 결렬을 공식화했다. 정치다운 정치를 기대했던 국민에게 실망만 안긴 채 더 센 특검법 개정안은 결국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됐다. 삼류도 못되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이틀 사이에 여야 합의와 번복, 강행 처리가 어지럽게 전개되었다. 언론은 이를 두고 '혼돈의 이틀'이라고 이름붙였다. 이유는 금세 밝혀졌다. 합의 소식이 전파를 타자마자 통칭 '개딸'이라 불리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 세례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내란 정당과 협치가 웬말이냐는 거다. 그때부터 민주당 안팎의 기류가 급변했다. 정청래 당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합의 책임을 놓고 낯뜨거운 진실 공방을 벌였다. 요즘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고 있는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SNS에 글을 올려 합의 파기 당론을 선도했고, 뒤늦게 이재명 대통령도 자신은 몰랐다며 발뺌하고 특검법 합의안은 협치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합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폭탄 돌리기이자 개딸을 의식한 선명성 경쟁이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거늘 모처럼의 여야 합의를 반기기는커녕 저마다 부인하고 반대하고 책임 공방을 벌일 만큼 개딸은 민주당을 쥐고 흔든다. 

민주당의 표변에 두 당은 즉각 전투 모드로 회귀했다. 야당에선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대통령은 개딸"이라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의정 전반에 걸친 민주당의 퇴행적 행태를 이해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어준이다. 그가 진행하는 유튜브는 눈도장 찍으려는 민주당 의원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김어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민주당의 당론이 되고 개딸들의 행동강령으로 작동한다. 김어준을 두고 '충정로 대통령'이니 '여의도 상왕'이니 하는 말이 나도는 이유다.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김어준의 권력화 현상을 공개 비판하고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의원의 용기에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권력자의 책에 감히 한 글자도 손을 댈 수 없듯 누구의 말에 한마디라도 토를 달 수 없다면 바로 그가 권력자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진정한 권력자가 누군지는 자명하다. 여당 정치인들이 개딸과 김어준의 위세에 눌려 끽소리 한마디 못하고 추종하는 것은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이 권력자 여불위의 눈치를 보느라 '여씨춘추' 한 글자도 건드리지 못한 것과 데칼코마니다. 그들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불위이고 그들의 말과 글은 현대판 '일자천금'이 되었다.

타협을 하지 말라는 강성 지지층의 비민주적 요구에 민주당이 마구잡이 청문회와 입법 폭주로 화답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협치에 대한 다짐은 무색해지고 힘들게 지켜 온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폭력적인 막말 퍼레이드에 국격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왕을 능가하던 여불위의 권세는 10년 만에 막을 내렸다. 권력을 잃고 지방으로 쫓겨난 여불위는 진나라 왕의 서슬퍼런 추궁에 중압감을 못이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