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51) 좋은 의도라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 교왕과정(矯枉過正)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봉건제를 없애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통일 왕조 진나라는 그러나 불과 15년 만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항우와의 초한전에서 승리하고 새 시대를 연 유방은 진나라 패망의 결정적 이유를 봉건제 폐지에서 찾았다. 진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수도 함양으로 달려와 구원해 줄 제후가 아무도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유방은 제국의 안정을 위해 봉건제를 부활시켜 땅을 나누고 개국공신들을 대거 제후에 봉했다.

현실은 유방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되었다. 제후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반란의 조짐을 보이자 불안해진 유방은 이성(異姓) 제후들을 모두 제거하고 유(劉)씨 성을 가진 동성(同姓) 제후들만 남겨 두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동성 제후들이 황제와 같은 혈통이라는 점을 내세워 멋대로 행동하고 온갖 횡포를 부리며 천하를 어지럽혔다.

마침내 곪은 종기가 터지기 시작했다. 5대 황제 문제(文帝) 시기에 회남왕(淮南王)과 제북왕(濟北王)의 모반이 있었고, 6대 황제 경제(景帝) 때는 일곱 제후국이 작당하여 '오초칠국의 난(吳楚七國之亂)'을 일으켰다. 모두 유씨 황족 내부의 갈등이 반란으로 증폭된 사건들이다. 경제는 반란을 진압한 후 서둘러 제후왕들의 관리 임명권과 조세 징수권을 회수했다. 

경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제(武帝)는 '추은령(推恩令)'을 반포하여 제후왕들의 적장자뿐만 아니라 모든 아들이 땅을 상속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반란의 싹을 원천봉쇄한 신의 한 수였다. 영지의 분할 상속이 가능해짐에 따라 한정된 봉토를 나눠 갖는 후손이 계속 늘어났고 제후국의 세력은 끊임없이 약화되었다. 결국 봉건제는 허울좋은 이름만 남고 사실상 소멸되었다.

후한(後漢)의 사가(史家) 반고가 쓴 《한서’(漢書)》는 사마천이 남긴 《사기(史記)》와 함께 대표적인 중국 고대 역사서로 꼽힌다. 반고가 《한서》 '제후왕표서(諸侯王表序)'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번국(藩國, 제후국)이 큰 곳은 주(州)와 군(郡)을 넘나들고, 수십 개의 성이 이어졌으며, 궁궐과 백관의 제도가 황실과 같았으니, 이는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지나쳤다(矯枉過其正矣)'고 할 수 있다." 

'교왕과정(矯枉過正)'이란 성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교왕과정은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반대쪽으로 휘어버린 것을 말한다. 반고는 유방이 봉건제를 부활시킨 것을 '교왕과정'의 전형이라고 보았다. 진나라 때의 잘못이나 편향된 것을 고치려다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교왕과정'이나 '교각살우(矯角殺牛)'는 '좋은 의도라도 지나침은 독이 된다'는 경구와 맞닿아 있는 성어들이다. '교왕과정'은 정치나 제도 개혁의 과함을, '교각살우'는 작은 결점을 고치려다 전체를 망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데 주로 쓰인다. 어떤 정책이나 법안이 기존의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더라도 그 방법이 너무 극단적이거나 과도하여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교왕과정의 우를 범하는 게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역사적 사례를 몇 개 살펴보자.

20세기 초 미국은 음주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줄이려고 '금주법'을 시행했으나 합법적 시장은 붕괴하고 갱단과 밀주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오히려 범죄와 부패를 키웠다. 전설적 갱스터 알 카포네는 금주법이 낳은 상징적 인물이다. 금주법은 결국 13년 만에 폐지되었다.

프랑스는 대혁명 직후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자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자코뱅파가 빵과 우유 등에 '최고가격제'를 도입하여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려 했으나 공급이 줄자 가격은 더 올라 식량난이 더욱 심화되고 약탈 사태까지 빈번히 일어나는 등 사회 혼란이 극심해졌다. 공포정치를 주도하던 자코뱅파 리더 로베스피에르는 민심을 잃고 불과 일년 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명나라는 왜구의 침입 방어와 내부 반란세력 견제를 위해 민간의 해상 무역과 해외 교류를 철저히 제한하는 해금정책(海禁政策)을 폈으나 밀무역이 성행하고 조선 기술과 항해술 쇠퇴, 군사력 약화와 국제적 고립을 불러왔다. 서양의 대항해 시대보다 100년 이상 앞선 15세기초 정화가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7차례의 대원정을 갔을 만큼 해양 최강국이었던 명나라가 해금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세계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당한 '백년의 치욕'도 없었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권력자들의 오판이나 정략적 계산에서 비롯된 교왕과정의 예는 차고 넘친다. 사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집권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검찰개혁안 등은 모두 기존 제도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에서 발의되었지만, 정도가 지나쳐 새로운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연루된 노동자가 받는 손해배상 처벌의 과중한 부담을 줄여주자는 선의로 시작되었다. 그런 노란봉투법이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하며 '사용자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하청 노조가 원청업체와 직접 교섭할 수 있게 했다. 원청은 이제 일년 내내 수많은 하청과의 단체교섭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불법 파업을 한 노조에 손해배상을 사실상 청구할 수 없게 만든 점도 논란거리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4년2개월 만에 크레인을 점거하고 ‘총파업, 총투쟁’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른바 ‘골리앗 농성’이다. 그동안 강경 투쟁의 상징 골리앗 농성이 자취를 감춘 것은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에 따른 법적·재정적 부담이 컸기 때문인데 노란봉투법이 그 족쇄를 풀어주었다. 

노란봉투법 통과 다음날 로봇·공장자동화 관련 기업 주가가 폭등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친노조 반기업적' 법안에 대한 사측의 대응은 공장자동화와 해외 이전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키오스크 도입을 촉진하여 음식점과 카페에서 사람을 대체했듯, 노란봉투법 역시 노동 현장의 로봇 도입과 사업장 해외 이전을 촉진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없앨 공산이 크다. 주한유럽,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한국 시장 철수를 입에 올리고 있다. 외국자본도 국내기업도 한국을 떠나면 노조는 혼자 남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검찰개혁안은 어떤가. 여권의 검찰개혁은 검찰의 수사권 박탈에 방점이 찍혀 있다.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검찰청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여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이유다. 쟁점은 중수청을 산하에 두게 된 행안부에 수사기관이 집중되는 문제점을 어찌할 것이냐다. 검찰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경찰이 수사권까지 독점하는 권력기관이 된다면 '민중의 몽둥이'가 안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이라는데 검찰에 대한 미움과 불신이 큰 민주당은 이마저도 박탈할 태세다.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다. 섣부른 개혁엔 부작용이 따르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어떤 부작용이 생기든 검찰의 힘만 빼버리면 검찰개혁의 완성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개혁적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다. 허나 개혁을 위한 개혁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 정부의 거부권에 가로막혔던 한풀이여서도 곤란하다. 강성 지지층만이 아닌 다수의 국민이 동의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그런 개혁을 보고 싶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개혁을 혁명으로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전광석화처럼 해치우자"라든가 "추석 전 완료" 운운하며 속도전을 벌일 일이 아니다. 구부러진 것을 바로 펴겠다고 하다가 오히려 더 구부러뜨려서야 되겠는가.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거늘.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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