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경주 APEC 행사가 무사히 종료되었다. 결과를 놓고는 평가가 분분하다. 아무튼 큰 문제 없이 치렀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다행히 한-미 간의 핵심 쟁점이던 관세 협상도 우려와 달리 나름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최종 합의문 확정과 발표가 미루어지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막판까지 미국 측이 한국을 강하게 압박했지만 이미 그들이 짜 놓은 시간표와 각본대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측은 자기네 들 이 원하는 것들을 대부분 얻었다. 처음부터 트럼프 측은 APEC 회담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한·중·일과의 관세 협상 마무리에 집중했다. 다자간 협상은 외면하고 오로지 양자 협상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는 트럼프의 일관된 고집이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다만 이번 APEC 회담의 결과와 미국 측의 행위를 추적해 보면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이는 남은 트럼프 재임 동안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국익을 놓치지 않고 사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는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에 그가 펼쳤던 정책 노선을 상기해 보면 답이 나온다. 작년부터 시작된 2기가 관세를 무기로 한 강경 보호무역 조치가 더 거칠기는 하지만 일정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바이든 임기 4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바이든의 경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과의 협력을 중시한 것과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중국을 때리겠다는 명분만 거창할 뿐이고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동맹으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는 이중적 잣대를 보인다.
결국 중국과는 관세 협상 휴전에 들어갔다. 중국이 버티면 미국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1기 때에도 4년 내내 관세를 지렛대로 중국과 줄다리기했지만 얻은 것은 없고 반대로 중국이 트럼프를 어떻게 다루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지혜만 선사했다. 바이든 시기에는 중국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트럼프 시기에 중국 경제가 더 강해지고, 미국에 반감을 품은 국가들과의 연대가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들 글로벌 질서의 변화를 간파하여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고 이를 역이용하여 국익을 사수 혹은 확대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분명한 사실은 미국 측의 무차별 관세 과녁이 중국이 아니고 한국을 비롯한 일본·EU·대만 등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이라는 점이다. 버틸 공간이 있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만만한 국가들을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 사단의 참모들도 중국보다는 일제히 동맹국에 더 가혹할 정도로 매섭게 몰아붙인다.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는 의외로 강경하지 않다. 이는 新냉전 질서를 더 부추기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위상을 더 위축시키는 방향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과 동맹국의 관계는 소원해질 것이고, 물과 기름과 같이 섞이지 않고 공회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도나 브라질 등과 같이 버틸 구석이 있는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할 것이다.
바뀐 글로벌 질서를 정확히 이해해야 국익 창출 루트에 접근 가능
이런 상황 인식 하에서 한국 경제의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국가마다 처한 입지가 모두 다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하고 주어진 여건을 역 이용하는 실용적인 접근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과도 형편이 상이하다. 일본은 기축 통화국이고, 외환보유고도 우리보다 3배 이상이나 많다. 외견상으로만 보면 일본은 트럼프 측과 미·일 동맹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자평한다. 중국의 급부상 속에 국력이 쇠잔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미국을 등에 업고 서라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이다. 일정 대가를 치르더라도 새로운 질서의 중심축에 진입하려는 적극적인 몸부림이다. EU도 내부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트럼프와의 일전은 보류하고 있다. 대만도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자중하는 모습이다.
이제 단추는 끼워졌다. 정부가 협상의 전면에 나섰으나 과정에서는 기업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상당한 이바지를 했다. 그리고 이익이 나든 손해를 보든 그 주체는 기업이고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렇다면 손해를 보지 않고 실리를 챙길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협상의 타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 기업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너무 요란을 떨 필요는 전혀 없다. 양국 간 조선 협력의 상징물이 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프로젝트도 조용하게 추진해야 한다. 괜히 일본이나 중국 같은 조선 경쟁국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
이런 질서라면 ‘안미경중(安美經中)’과 같은 잣대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시소게임도 안 통한다. 트럼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중국은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에 대해 계속 이간질을 할 것이다. 이런 중국에 대해서도 의연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중국의 제조업 역습은 현재진행형이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지속하되 우리가 먼저 서두를 이유는 없다. 차제에 미·중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는 경제 체질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들에 집중된 수출선을 다변화해야 하고, 지나치게 중국 의존적인 수입선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미·일 주도의 광물 공급망에도 들어가야 한다. 한편으론 엔비디아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AI 동맹 전선을 넓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한국의 경제적 토양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APEC 결과는 한국 경제를 또 다른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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