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칼럼] 중국의 '한일령'(限日令), 웃을 수 없는 이유

  • 동북아 지정학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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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중국 당국과 중국인들은 관광 분야 취사선택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 선명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중·일 간 외교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사이 한국이 지난주 중국인들의 해외항공 예약률 국가 1위를 차지했다. 2024년 한국은 중국의 아웃바운드 분야에서 일본, 태국에 이어 3위였고 같은 해 한국은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가장 많이 찾는 해외 관광지로 택했던 것을 감안하면 중·일 외교 갈등으로 인해 당분간 한국은 양자 사이에서 반사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무역수출로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해온 우리에게 중·일 갈등은 또 하나의 외교적 시험대일 수 있다. 마침 지난 18일 열린 서울외교포럼에서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와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는 “뗄 수 없는 파트너” “강력한 한·일 관계”로 한국을 호명했다.

팝콘을 한 손에 쥐고 중·일 사이 분쟁을 통해 누리는 반사이익은 잠시의 찰나에 불과하다. ‘누림’은 곧 ‘끼임’이다. 영화는 끝날 것이고 과정적·사후적으로 이 지정학의 갈등이 초래한 엄혹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해 잠시 잊고 지냈던 이른바 동북아 지정학의 본격 귀환이다. 중국의 한일령 이전에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해 2017년 본격화된 한한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갈등 역시 결코 해프닝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중·일 양국의 갈등은 대만 유사시에 대한 인식 차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으로도 대만은 청일전쟁(1894~1895)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 반환되었다. 이 역사적 경과와 국공내전 이후 대륙과 분리된 대만의 특수성은 양국 간 영유권 및 역사 인식 갈등의 근본 원인이다. 대만 문제는 중국-일본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이라는 중국의 핵심 이익과 일본의 안보 이익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핵심 요인이다. 대만은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고 서태평양 안보에 필수적인 '불침항모' 역할을 한다. 일본 입장에서 대만은 에너지 수송로 및 안보의 최전선에 위치해 중국이 대만을 장악하면 일본의 안보와 경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이러한 국가적 인식하에서 지난 7일 일본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有事)는 일본 유사(有事)' 발언에 다음 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인 쉐젠(薛劍)이 “제멋대로 들이민 목을 한순간 주저함도 없이 베어버리겠다”는 극언으로 응수하면서 사태는 커져갔다. 쉐젠은 ‘목을 베는 교제’, 즉 깊은 신뢰를 상징하는 중국의 사자성어 문경지교(刎頸之交)와는 정반대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중국 고위공무원들의 다카이치 풍자만화 배포 등 ‘전랑외교’ 논란에 불을 지폈고 예상한 대로 중국 당국은 쉐젠을 감쌌다. 핵심 이익에 대한 중국 당국의 조치는 즉각적이었다. 대일본 △여행 자제 △유학 규제 △수산물 수입금지 △내년 1월 한·중·일 정삼회담 거부 등을 시작으로 희토류 제재로 인한 무역 전면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희토류 수출제한 카드는 중국에도 피해가 상당하지만 일본에는 제조업과 첨단 산업 중심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2010년 센카쿠 분쟁의 재현이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70% 전후의 지지율을 등에 업고 ‘대만 발언’을 철회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반도의 근본 문제 해결에는 분명 악재다.

첫째, 한반도 외교에 있어 전략적 모호성 유지의 어려움이다. 당장은 중·일 양쪽에서 한국의 몸값이 높아질 수 있으나 이재명 정부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회색 지대(Gray Zone) 외교의 당사자에 미·중에 이어 일본 변수가 추가됨으로써, 특히 북한 문제를 포함한 안보 분야에서 한·미·일 공조, 경제 분야에서 한·중·일 협력 모두 실기할 우려가 있다.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불가피하고 미국이 승인한 원자력잠수함 추진과 역내 안보 역량 확보에 있어서는 중국의 민감한 반응을 최소화하는 한편 일본의 방조 또한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선 대만 유사시를 포함한 동북아 및 태평양 지역 분쟁에 투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미 국방부 장관 등 고위 당국자들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여 동맹국들의 국방비 증액과 역할 확대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일 갈등은 한국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선택을 요구받아왔던 상황의 지정학적 축소판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필요시 대만 문제에 관한 일본의 선명성을 한국에도 요구하며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대미 로열티를 저울질하고자 할 것이다. 한·미 팩트시트에 담긴 원자력잠수함 프로젝트는 최소 10년 이상 소요가 예상되며, 운용 목적 등 여러 불확실성에 대한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안보 분야에 있어 동맹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적 국방 역량 강화를 통해 우리의 역내 전략적 선택지를 넓힐 수 있기에 이 과정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역내 군비경쟁을 유발할 수 있는 중·일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변수는 최소화되는 것이 옳다.

둘째, 중국의 한일령 조치의 장기화와 분쟁 격화의 영향이다. 중·일 갈등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되면 엔화 하락과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국내 주식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수출 및 공급망 분야에서 한국의 경제적 타격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흑연 등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일 갈등 심화로 중국이 이러한 핵심 광물을 '무기화'할 경우 일본뿐 아니라 해당 공급망에 얽힌 한국 기업들의 생산 라인에도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일본을 통해 한국의 대미 로열티를 저울질한다면 한국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국 역시 한국의 대만 해협에 대한 외교적 입장과 동맹 현대화의 추이를 보아가며 한한령의 수위를 저울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일령 장기화를 통한 중국 경제의 둔화는 한국의 수출 둔화로 한국 해상 무역량의 90% 이상이 통과하는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부근에서의 분쟁 격화는 해상 물류 통행 차질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결과적으로 이제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일본 신임 총리의 선명성 외교는 미·중 양국에서 한국에 직간접적인 외교적 압박의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동북아 신냉전 구도의 고착으로 한반도의 평화 구축과 남북 관계 개선이 더욱 요원해진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동북아 지정학의 귀환이 달갑지 않은 이유이다.
 
한기호 필자 주요 이력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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