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의 C] 흑백사진 여섯 컷에 담긴 1980년대 암울한 시대상

  • 서울시립미술관 세번째 개관 특별전

  • 정동석·김용익 등 현대미술 거장 36인 작품 한눈에

정동석〈서울에서〉 1982 젤라틴 실버 프린트 222×32cm×6 작가 소장 사진서울시립 사진 미술관
정동석,〈서울에서〉, 1982, 젤라틴 실버 프린트, 22.2×32㎝(×6), 작가 소장. [사진=서울시립 사진 미술관]

여섯 컷의 직사각형 흑백 사진에 암울한 침묵이 깔려 있다. 정동석의 작품 '서울에서'(1982)는 1980년대 서울 광화문 일대에 설치된 국정홍보판을 통해 신군부 체제 아래 꽁꽁 얼어붙은 시대상을 드러낸다. 공포 정치가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짓눌렀던 당시, 침묵은 강제됐다. 이 사진은 1980년대 깜깜했던 현실을 증언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세번째 개관 특별전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는 1980년대 신군부 정권의 통제 아래에서도 사진을 매개로 한국 사회를 성찰하고 기록을 예술적 증언으로 전환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982년 어느 날 정동석은 우연히 국정홍보판이 비어 있는 모습을 봤다. 그는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서울에서'다. 경상북도, 강원도, 제주도 등 지역 이름이 무심하게 적힌 빈 홍보판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전라남도 게시판 앞에는 경찰 두 명이 웃으며 지나간다. 이 작품은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벌어진 잔인한 국가 폭력에도 공포로 인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무거운 공기와 그 속에서 숨죽여 살아갔던 사람들의 죄의식을 드러낸다. 
 
서울에서
정동석,〈서울에서〉, 1982, 젤라틴 실버 프린트, 22.2×32㎝(×6), 작가 소장. [사진=서울시립 사진 미술관]

'서울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발표됐다. 과거 작가의 아내 임선희는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동대문에서 구한 고운 삼베를 전시장 벽에 부착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군부의 검열로 인해 '서울에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임선희의 위로는 실현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을 건 전시장 벽면에 삼베를 붙였다.
 
김용익 〈“신촌의 겨울”에〉 1981 종이에 사진 잉크 355×40cm 34×395cm 275×395cm ×12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서울사진 미술관
김용익, 〈“신촌의 겨울”에, 1981, 종이에 사진, 잉크, 35.5×40㎝, 34×39.5㎝, 27.5×39.5㎝ (×12),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서울시립 사진 미술관]


5·18 광주민주항쟁 직후 일상을 살아갔던 이들의 무력감을 포착한 사진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김용익은 작가 최민화(당시 최철환)가 1981년 기획한 '신촌의 겨울'에 초대돼 '"신촌의 겨울"에'(1981)를 출품했다. 이 작품은 그가 신촌 일대를 거닐며 촬영한 사진과 자전적인 서사(내러티브)로 이뤄진 에세이를 배열한 14장의 종이로 구성된다.

에세이는 "다음의 사진들은 내가 이 기획에 참여하여 신촌 거리를 거닐며 찍어본 사진들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신촌의 거리와 골목, 하늘, 땅, 또 신촌에서 마주한 낫과 괭이 등 일상의 단면들이 찍힌 사진이 이어진다. 

그러면서 그는 '한계'를 말한다. "그림 속의 낫으로 풀을 벨 수 있다면 어느 한계까지일까? 그림 속의 괭이로 나무뿌리를 캘 수 있다면 어느 한계까지일까?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한계를 자각하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렇지 그랬어.'"  

김용익은 엄혹한 현실 속에서 예술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즉 예술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을 "1980년 광주항쟁 직후 어찌할 수 없는 정치적인 현실 앞에서 무력해진 한 예술가의 진한 넋두리"였다고 회상한다. 

한편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36인의 사진과 사진 이미지를 창작의 매개로 활용한 작품, 그리고 자료 300여 점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관에서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