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공청회 "재판 지연 문제, 대법관 아닌 하급심 증원이 해법"

법원행정처는 법률신문과 공동으로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911일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개최했다 첫날인 9일 첫 번째 세션인 ‘우리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에서 토론이 이뤄지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법원행정처는 법률신문과 공동으로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9~11일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개최했다. 첫날인 9일 첫 번째 세션인 ‘우리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에서 토론이 이뤄지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사법개혁 의제 논의에 착수한 첫날인 9일, 법원·학계·변호사·시민사회는 재판 지연의 근본 원인이 대법원이 아닌 1·2심 사실심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정치권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 논의가 재판 지연 해소와 직결되지 않는다며 “해법은 하급심 법관·지원 인력 확충”이라고 강조했다.

기우종 서울고법 인천재판부 부장판사는 재판 지연이 단순한 처리 속도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인력 불균형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전문화·복잡화된 사건이 늘어나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리를 탐색하는 데 필요한 노력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기록 분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인력 구조는 이에 맞춰 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 부장판사는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이 사실심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 재판부가 감당해야 하는 평균 사건량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장기 미제 사건도 빠르게 늘고 있고,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사실심 단계에서 병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단일 제도 개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인력·업무량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년 사법연감에서도 이런 흐름이 드러난다. 민사 1심 합의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7년 293일에서 2024년 437일로 늘었다. 형사 사건도 증가 추세가 뚜렷해 1심 형사합의는 2017년 150.8일에서 2024년 198.9일로 31% 증가했고, 지방법원 형사항소심 처리 기간은 같은 기간 141.1일에서 225.0일로 59% 늘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사건의 평균 기록 분량도 245쪽에서 1149쪽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공두현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재판 지연의 핵심 원인을 “법관 인력 구조의 지속 가능성 문제”에서 찾았다. 그는 “최근 수년간 신규 임용보다 퇴직자가 더 많은 구조가 계속돼 왔다”며 “29기 이후 정년 도달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시기가 도래하면 매년 100명 이상 자연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감소 속도를 감안하면 일정 규모의 신규 임용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법관 증원은 상고심 보조 인력 수요를 키워 사실심 인력 공백을 오히려 확대할 수 있다”며 상고심 중심 개편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김기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수석부회장은 국민이 체감하는 사법의 품질이 사실심에 좌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재판의 공정성과 충실도를 직접 경험하는 곳은 1심 법정”이라며 “사실심 법관을 늘리고 사건 부담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개선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관 처우·직무 구조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며 “우수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은 “재판 지연의 원인은 대법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심 부족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관 증원은 상고심 기능 강화에 가까운 조치로, 실제 병목을 해소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며 “국민이 원하는 것은 1심에서 충분한 심리와 설명을 받는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과 사법부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사법부에 설명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김승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판결 이유와 절차가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고, 사회를 맡은 이세롬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부장판사는 “재판을 잘하는 것뿐 아니라 재판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신뢰 형성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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