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남미의 전투기 시장, 한국은 왜 테이블에 없었나

박선태 전 주페루공사 현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박선태 전 주페루공사, 현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콜롬비아는 최근 스웨덴 Saab의 JAS-39 그리펜 전투기 17대를 총 31억 유로 규모로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노후화된 Kfir 전력을 대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계약 체결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단순한 전력 현대화로만 보기 어렵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번 전투기 도입이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의문은 오히려 커진다. 기체 가격 외에 무장 체계 포함 여부, 조종사와 정비 인력 양성, 장기 유지·보수 체계, 정비창 구축, 그리고 식수 공급·에너지 전환 등 사회 인프라 사업이 간접 오프셋 형태로 포함됐다는 설명만 있을 뿐, 각 항목이 어떤 범위와 비용 구조로 구성돼 있는지는 상세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전투기 기체와 무장 체계를 일괄 패키지로 구매한 것인지, 아니면 기체와 무장을 별도로 조달하는 구조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이 없다. 이는 전투기 도입의 실질적인 총비용을 평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Saab 측 모두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무장이 포함됐다는 언급과 인력 양성, 정비 인프라 구축 계획만 반복될 뿐, 무장의 종류와 범위, 향후 추가 비용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불투명성은 계약 금액을 둘러싼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Saab는 31억 유로 규모의 계약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를 달러나 페소로 환산한 언론 보도에서는 출처마다 서로 다른 수치가 제시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실제 총비용이 얼마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한 대선 후보는 이번 전투기 계약을 두고 부패 가능성과 절차적 불투명성을 문제 삼으며, 미국 관계기관에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방산 계약을 둘러싼 국내 논란이 외부 조사 요청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국민적 신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전투기 도입 문제는 현 정부를 넘어 차기 정부에서도 상당 기간 정치적 쟁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전투기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이는 기술력이나 개발 성과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콜롬비아가 한국과의 역사적 군사 협력 관계, 즉 한국전 참전국이라는 인연보다 당장의 정치·전략적 선택지와 외교적 계산을 더 중시한 결과로 해석된다. 전투기 도입이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니라 외교·정치적 판단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페루 역시 노후 전력을 대체하기 위해 24대 규모의 전투기 도입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분명 의미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지 언론 보도와 군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한국 기종은 아직 우선 검토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반면 스웨덴산 그리펜은 콜롬비아에 이어 페루에서도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투기 수출은 단순한 방산 계약이 아니다. 외교, 산업 협력, 정치적 신뢰가 결합된 장기적 국가 투자에 가깝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방산 시장에서는 가격이나 성능 못지않게 계약 구조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콜롬비아에서의 경험과 아직 결정되지 않은 페루의 선택은, 한국 방산외교가 제품 중심 접근을 넘어 관계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중남미전문가(전 외교관, 페루 투르히요 국립대명예교수) ▲국가철도공단 글로벌대사 ▲ 중남미철도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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