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칼럼] AI 대가의 시간, 2026년 한국의 선택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2026년 세계 경제는 두 가지 거대한 지진의 충돌로 요동칠 전망이다. 하나는 인공지능(AI)의 경제적 실험이 본격적인 '대가 지불'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미·중 패권 경쟁이 초래한 '국가자본주의 2.0' 체제가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들을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몰아넣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 복합 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순환이 아닌 세계 질서의 구조적 재편을 의미한다. AI가 약속하는 미래의 생산성 향상과 국가 간 분열이 초래하는 당장의 성장 둔화 사이에서 한국은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라는 '마지막 실탄'을 어떻게 발사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고민에 직면해 있다. 해답은 과감한 제도 개혁과 지능적인 글로벌 연합 전술에 있다.

AI는 이제 낙관론이 아니라 비용의 정치학이다

AI에 대한 전 세계적 투자 열풍이 2025년 세계 성장을 이끌었지만 2026년은 그 이면에 숨겨진 경제적 비용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가 될 것이다.

첫째, 자원 배분의 심각한 왜곡이 '기회비용'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동원되는 막대한 건설 인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가동을 위한 천문학적 전력, 그리고 이를 위해 조성되는 자본은 결국 다른 경제 부문에서 빼앗긴 자원이다. 이는 이미 미국에서 공장 건설 붐의 둔화와 인프라 프로젝트 지연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주택 건설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동일한 압박이 나타날 수 있다.

둘째, AI 인프라의 전력 수요는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작용한다.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은 중소 도시 전체 수요에 맞먹는다. 이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은 단순한 물가 지표를 넘어 소비자의 체감 물가와 정치적 불만으로 직결된다. 스마트 계량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전기요금은 소비자 심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결국 AI 발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훼손할 수도 있는 요인이다.

셋째,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의 괴리도 도드라질 전망이다. AI 관련 기업의 주가가 선행 상승한 반면 투자 대비 생산성 증대 효과는 수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날 것이다. 이 간극 동안 기업의 이익 압박과 자금 조달 비용 상승은 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

G(-)2 분열 시대, 국가자본주의 2.0이 재편하는 세계의 법칙

AI 발전과 병행하여 세계 경제 운영의 근본 규칙이 '국가자본주의 2.0' 체제 아래 재편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호무역주의의 회귀가 아니라 국가가 기술 표준 설정, 공급망 관리, 자본 배분에 전략적으로 개입하여 경제안보와 기술주권을 확보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이제 글로벌 성장의 동력(G2)이 아닌 불확실성의 원천, 즉 G마이너스2(G(-)2)로 인식되며 이는 모든 국가들에 이중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반도체법(CHIPS Act)의 '가드레일' 조항과 같이 민간 자본의 흐름을 안보 목표에 정렬시키는 교묘한 규제 방식으로 대응하는 반면 중국은 '신질생산력' 전략 아래 국가 주도의 대규모 직접 투자를 통해 맞선다.

이 양극화된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은 더 이상 중립적 관망자로 있을 수 없는 전략적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의 출범은 변화된 환경에 대한 필수적 대응이다. 그러나 이 펀드는 인구 고령화와 재정 건전성 압박을 고려할 때 다시 반복해서 조성하기 어려운 '한 방'의 기회다.

이 펀드의 성패는 자본의 절대적 규모보다 그 자본이 유통하는 경로, 즉 제도의 효율성과 민첩성에 달려 있다. 중국이 바이오 산업에서 규제 개혁을 통해 단숨에 글로벌 플레이어로 부상한 사례는 자본의 양적 투입만으로는 부족하며 혁신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을 해체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시사하는 좋은 사례다.

한국의 생존법, 제도 대혁신과 지능적 연합의 이중주

복합적 위기를 단일한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은 다층적 전략을 통해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전환해야 한다.
첫째, AI 생태계에서 수동적 추격자를 넘어 능동적 표준 설정자로 도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넘어 한국만의 차별화된 기술 경로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AI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 장애물인 '전력' 문제를 한국이 강점을 가진 차세대 저전력 반도체 설계 기술과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기술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국제 표준화 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AI 성능 평가, 데이터 품질, 윤리 기준 등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둘째, G(-)2 시대에는 '지능적 연합'이 최고의 외교 전략이다. 미·중 가운데 한 진영을 선택하라는 압박은 함정일 수 있다. 한국은 특정 기술과 시장에서 다양한 국가들과 유연한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AI 알고리즘, 일본의 정밀 소재, 대만의 첨단 제조, 유럽의 산업 응용 네트워크를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및 플랫폼 기술과 결합하는 글로벌 컨소시엄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 목표는 특정 블록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없이는 구축하기 어려운 핵심 공급망의 '필수 노드'가 되는 것이다.

셋째, 모든 전략의 성공을 좌우할 '제도 대혁신'을 서둘러야 한다. 150조원의 거대 자본이 기존의 낡은 행정 절차, 경직된 노동 시장,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들에 부딪힌다면 그 효과는 극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AI와 신산업의 발전 속도에 맞춰 규제 샌드 박스를 대폭 확대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투자 문화를 조성하며, 글로벌 인재가 모여들 수 있는 개방적인 연구 환경과 생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혁신의 속도는 결국 제도의 유연성과 사회의 포용성에 비례한다.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이다. 2026년은 AI의 경제적 영향이 본격화되고 국가 간 경쟁이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되는 전환의 해이다. 한국은 국가자본주의 2.0이라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동시에 AI 대전환의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 복잡한 방정식의 해법은 명확하다. 바로 과거의 성공 공식에 집착하지 않고 낡은 제도를 과감히 해체하는 '제도 대혁신'과 글로벌 분열을 뛰어넘어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여는 '지능적 연합'에 대한 대담한 투자이다. 150조원이라는 마지막 실탄은 이 두 개의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하여 발사되어야 한다. 위기는 변화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위협이지만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과감히 변신하는 자에게는 값진 기회가 될 것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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