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기초연구 생태계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이준호 서울대학교 교수 사진아주경제DB
이준호 서울대학교 교수 [사진=아주경제DB]


지난 R&D 예산 삭감을 거치면서 훼손된 기초연구 생태계가 역대 최대 규모 예산 편성을 통해 복원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정부는 단순 복원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최근 '기초연구 생태계 육성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는 연구 현장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특히, 연구계에서 그간 주장해 온 '다양성'과 '수월성'이라는 두 가치의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연생태계에서 생물학적 다양성은 생태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가 30년 이상 연구하고 있는 꼬마선충만 하더라도 지구적으로 다양성이 대단해서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융성해 있는 모습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초연구 생태계에서도 다양성은 지속가능 성장의 근간이 되는 요소이다. 우리는 노벨상을 수없이 배출한 일본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수많은 노벨상의 뿌리가 된 장기적 풀뿌리 연구 지원의 힘에 대해서는 '나눠먹기식'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다양한 배경, 분야의 연구자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지식을 탐색해 나갈 때 예기치 않은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규모 장기 기본연구 복원은 연구 기반이 취약한 연구자들도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여 기초연구 생태계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정부가 기초연구 사업을 '수혜율' 중심으로 관리하겠다고 선언하고 '전임교원 수혜율 50%'라는 목표를 설정한 것 또한 다양한 연구자들에게 마음껏 연구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생태계의 다양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이제 막 연구계에 진입하는 청년 연구자들이 가장 중요하며, 정부는 이들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더욱 탄탄히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수월성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최우수 연구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에 정부가 리더연구자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톱티어 트랙을 신설한 것은 좋은 출발점이다. 다만 노벨상급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단순 연구비 지원을 넘어 연구자들이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이들의 성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속적으로 마중물을 대 주어야 할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정부가 혼자 해 나갈 수는 없다. 최근 구글에서 연속으로 노벨상을 배출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기업 등 민간기업도 미래 기술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정부가 민·관 매칭 펀드와 같은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기초연구 생태계가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자율이 창의성의 기반이다.

정부의 기초연구 정책의 큰 방향은 아주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이 모든 방안이 세밀히 설계되고 차질 없이 이행되어야 실질적인 변화를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연구계와 더욱 긴밀한 소통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생태계가 갖춰진다면 기초연구 5대 강국 달성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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