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환율과의 전쟁, 李정부 실력 고작 이 정도인가

  • 이도윤 증권부장

이도윤 증권부장
이도윤 증권부장

정부로서는 몹시 난감할 일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환율안정 종합대책을 내놓은 게 딱 20일 전인 지난달 24일이었다. “정부 능력을 보게 될 것”이라는 역대급 경고장도 날렸다. 그런데 결과가 참 민망하다.

정부의 초강력 경고에 1449.80원(지난달 24일)에서 1420원대로 잠시 주춤하던 원·달러 환율은 새해 들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14일 종가 기준 환율은 1474.90원까지 치솟았다. 경제부총리가 급거 출장길에 올라 미국 재무장관의 '구두개입'을 이끌어냈지만, 얼마나 오랜기간 효과를 낼 지는 미지수다. 

"보여준다던 '능력’이 고작 이거냐"라고 해도 정부로서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이리떼 같은 글로벌 투기세력들에게 한국 환시(換市)가 만만한 놀이터로 비칠까 그게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주변에선 이제 원·달러 환율 1500원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들이 적지 않다. '1500'은 두려운 숫자다. 심리적 저항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이 숫자를 넘기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국민 실생활에 큰 충격이 가해진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경제가 '1500'이란 숫자를 목도한 건 딱 두 차례였다. 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1998년 3월까지가 첫 번째였다. 당시 최고 환율은 1997년 12월 23일의 1962원이었다. 두 번째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다. 이때 최고 환율은 1551원(2009년 3월 4일)이었다.
 
19972026년 환율 그래프
1997~2026년 환율 그래프

그 두 시기에 외환당국은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나라가 곧 망할 위기였던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말할 필요도 없다. 환율방어가 곧 주권의 방어였다. 2008~2009년에도 환(換) 전쟁은 치열했다. 밖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리먼브러더스 등이 줄줄이 파산하고, 안으로는 경상수지 악화 등 악재가 겹겹이 닥치던 때였다. ‘3월 위기설’, ‘9월 위기설’ 등 한국 경제 위기를 점치는 말들이 횡행하면서 1000원대이던 환율이 순식간에 1500원 전후로 치솟기도 했다. 두 번째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월가와 워싱턴 인맥을 총동원해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가까스로 불씨를 껐다. 

과거 두 차례 환(換) 위기에 비하면 지금은 '태평성대'다. 수출은 비교적 잘 버티고 있고, 증시도 최고조다. 외환보유고도 넉넉하다. 한국 경제 위기설을 점치는 그 어떤 징후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환율 대책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을 어찌 봐야 할까. 

답은 나와 있다. 대증요법 아닌 장기 처방전이 없어서다. 환율은 그 나라의 경제 실력을 보여주는 종합 지표다. 그래서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원화값이 떨어지는 이유를 구조적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래 성장동력 부재, 내수침체 장기화, 구조 개혁 등에 대한 오랜 고민과 해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그걸 안한 건 역대 모든 정부의 연대 책임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걸 뻔히 알 텐데도 대증요법만 남발하는 현 정부다. 생리대 가격까지 챙기는 '만기친람' 이재명 대통령은 환율 얘기를 절대 안 한다. 대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기업들 불러모아 "달러 쟁여놓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증권사들에 해외주식 마케팅 금지령을 내렸다. 환율급등의 원흉은 '수출 대기업'과 '서학개미'라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애꿎은 기업과 서학개미를 단도리해서 잡힐 환율이 아니다. 당장 급한 불은 꺼야겠으나, 좀 더 길고 멀리 내다보면서 경제 실력을 키울 '처방전'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게 실력이고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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