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로맨스로 돌아온 박서준에게 '경도를 기다리며'는 한 인물의 시간을 온전히 껴안아야 하는 작품이었다. 스무 살과 스물여덟, 두 번의 연애 이후에도 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온 이경도의 시간을 따라가는 서사는 단순한 재회 멜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견디고 축적해왔는지를 묻는 이야기였다. 박서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사건보다 감정,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인물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다.
"일단 경도를 표현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어요. '경도를 기다리며'는 두 인물의 서사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그 서사를 얼마나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죠. 그런 면들이 어느 정도는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도 느꼈고요."
박서준에게 이번 작품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의미를 둔 작업이었다. 극적인 장치보다 감정의 결이 중요했고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쌓아가는 방식이 요구됐다. 그만큼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섬세함이 필요했다.
"잘 끝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은 감정 표현이 정말 중요한 작품이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섬세하게 임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후회는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쏟아부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경도를 기다리며'는 박서준에게 7년 만의 로맨스 복귀작이기도 했다. 다만 그는 숫자보다 이야기 자체에 더 끌렸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관통하는 서사가 배우로서도 새로운 자극이 됐다는 설명이다.
"사실 몇 년 만의 로맨스인지는 크게 생각 안 해봤어요. 로맨스도 정말 다양하잖아요. 이번 작품은 특히 긴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였다는 점이 저를 많이 끌어당겼던 것 같아요. 인물의 시간을 나열하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느꼈고요."
촬영을 마친 뒤 전체를 다시 바라보며 작품에 담긴 감정의 밀도를 새삼 실감하기도 했다.
"12부까지 다 보고 나니까 생각보다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더라고요. 단순히 사건으로만 보면 지나갈 수 있는 장면들도 인물의 감정으로 보면 다 의미가 있었고요. 그런 점에서 배우로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어요."
숫자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경도를 기다리며'는 첫 방송 시청률 2.7%로 시작, 마지막회 4.7%로 막을 내렸다. '이태원 클라쓰'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서준에게는 다소 아쉬운 시청률임은 사실이다. 게다가 7년 만의 로맨스 드라마로 팬들의 기대감이 컸던 만큼 씁쓸함이 남는 건 사실이었다.
"작업한 사람 입장으로는 당연히 많은 사람이 봐주면 좋죠. 충분히 그럴만한 이야기고요. 이렇게 긴 서사를 다루는 작품이 최근에 없었던 거 같아서 결국 취향 맞는 사람이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바람이 있다면 회자가 많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묻힐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서준은 이경도를 통해 20대부터 30대까지, 한 인물의 시간을 오롯이 짊어져야 했다. 시기가 오가는 구조 속에서 동일한 배우가 다른 시절을 연기해야 하는 설정은 자칫 인위적으로 보일 위험도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처음부터 "직접 연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제가 그때부터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시간 배열이 왔다 갔다 하니까, 그 제안을 드린 거고요. 감독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걸 표현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제가 실제로 겪어본 시절이니까 자신도 있었어요. 외적으로 20대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있었는데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분명히 다르잖아요. 그 차이를 잘 표현하면서 시기를 보여주고 싶었고, 시간이 지나면서의 경도를 표현하되 한결같은 지점은 꼭 가져가고 싶었어요."
20대와 30대를 오가는 과정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붙들었던 키워드는 '변화'보다 '유지'였다. 외적인 변신보다는 감정과 태도의 결을 통해 인물의 시간을 설득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외모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헤어스타일이나 그런 것도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고 느꼈고요. 한결같음을 표현하는 데 외적인 부분도 포함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경도라는 인물은 지우를 사랑한다는 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그게 경도의 한결같음이고 지우를 대하는 경도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했어요. 경락도 받고 외적으로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거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가까이에서 기자들을 봐왔던 박서준에게 연예부 차장이라는 설정은 낯설지만 완전히 동떨어진 직업은 아니었다. 오피스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감각 역시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였다고 짚었다.
"컴퓨터 같은 것도 '아, 이런 걸 써야겠다' 싶었어요. 오피스라는 공간을 제가 처음 연기해보는 거라서 실제로 오피스를 많이 가본 건 아니지만 공간이 주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딱 앉았을 때 '아, 기자다'라는 느낌이 명확하게 들었어요. 잠깐이지만 모니터로 드라마를 보는 장면도 있는데 보면서 '이러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기사도 쓰고 그러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저한테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제작발표회도 많이 했고 신인 때는 신문사에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도 했었잖아요. 그래서 접근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기자를 연기해보며 실제 기자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는 웃으며 솔직한 답을 내놨다. 과거의 궁금증과 지금의 이해가 분명히 달라졌다는 고백이었다.
"옛날에는 궁금했어요. 같은 말을 해도 왜 이렇게 다르게 나올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다 이해가 돼요. 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고요. 지금은 전혀 안 좋다거나 그런 마음은 없어요."
작품 선택의 기준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질문에는 '확장'보다는 '지금 가능한 이야기'라는 답이 먼저 돌아왔다. 스펙트럼을 넓히겠다는 목표보다 현재의 나이와 감정에 맞는 이야기를 우선하고 싶다는 쪽에 가까웠다.
"스펙트럼 확장이라는 말은 좀 큰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지금 이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게 최우선이었어요. 이번 작품을 했으니까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고요. 뭔가를 정해두기보다는, 그때그때 관심이 생기는 쪽으로 해보고 싶어요. '경성 크리처'를 2년 정도 찍다 보니까, 그런 장르보다는 조금 더 현실에 닿아 있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더라고요."
이어 '기다리고 있는 역할이나 시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나이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특히 40대라는 시간에 대한 기대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40살이요. 흔히들 남자는 40부터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아직은 준비 중인 느낌이고요.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40에서 43 정도는 돼야 그 느낌이 날 것 같아요. 누아르 같은 장르를 그동안 선호하지 못했던 이유도 제가 너무 어려 보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게 잘 안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 나이가 되면 어울리지 않을까 싶고 선택의 폭도 달라질 것 같아요. 도전할 수 있는 작품도, 출연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지금과는 또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의 로맨스도 지금과 전혀 다를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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