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는 애초부터 외교의 산물이었다.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에 온 판다는 늘 관계의 안정성을 상징해 왔다. 1984년 워싱턴조약 이후 ‘증여’는 사라지고 ‘대여’로 바뀌었지만, 판다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다. 관계가 좋을 때는 곁에 있었고, 관계가 식으면 돌아갔다.
이번 판다 반환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중·일 관계는 눈에 띄게 냉각돼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대만 유사시 관련 국회 발언은 중국을 자극했고, 중국은 이를 일본의 대만 문제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후 외교적 긴장은 여러 층위에서 감지됐다. 판다는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난 상징이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신규 판다 대여를 요청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았고, 일·중 우호의원연맹도 움직였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과정은 조용히 지나갔다. 외교 문제로 키우지도 않았고, 감정적인 언어도 등장하지 않았다. 요청은 했지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판다 제로’라는 표현에는 일본 사회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아니다. 다만 감정을 공적인 언어로 드러내는 데 매우 인색하다. 아쉬움은 개인의 영역에 남기고, 공적 공간에는 사실과 형식만 남긴다. 그래서 상실은 애도가 아니라 정리의 언어로 기록된다.
대조적인 장면도 있다. 프랑스에는 판다가 다시 간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상회담 직후 중·불 판다 협력 연장이 발표됐다. 관계가 관리되는 곳에는 상징이 남고, 균열이 생긴 곳에서는 사라진다. 중국은 판다를 통해 이 사실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최근 중국이 한국에 대해 판다 추가 대여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판다는 호의의 선물이 아니다.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신호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판다는 귀여운 동물이지만, 외교에서는 체온계에 가깝다. 일본에서 판다가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판다 제로’는 일본 사회가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일본은 소란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상태를 정리했다. 감정을 밖으로 쏟아내지 않는 대신, 관계의 변화를 조용히 받아들인다. 판다가 떠난 자리에는 아무 말도 남지 않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지금의 중·일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