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150엔은 비정상, 130엔이 마지노선"…日 중소기업계 '엔저 선전포고'

  •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엔 약세 방치하면 임금 못 올려줘"

  • 130엔 실현 시 한일 경합 업종 '반색' 속 글로벌 금융 변동성 경계령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엔 달러 환율을 나타내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엔 달러 환율을 나타내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일본 중소기업계가 심각한 엔화 약세(엔저) 현상을 국가 주권의 위기로 규정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30일 고바야시 켄 일본상공회의소(JCCI) 회장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환율 수준을 "과도하게 약한 비정상적 상태"라고 비판하며, 달러 당 130엔 수준으로의 회복이 일본 경제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내 120만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고바야시 회장이 이처럼 구체적인 환율 수치를 제시하며 정부의 강력한 실력 행사를 요구함에 따라, 향후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의 정책 기조 변화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고바야시 회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5일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중소기업에 바람직한 환율은 적어도 1달러당 130엔 이하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한 바 있다.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바야시 회장이 현재의 엔저 현상을 실물 경제의 수요가 아닌 투기 세력에 의한 결과물로 규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정부가 ‘완력(腕力)’을 써서라도 엔고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장의 흐름에만 맡겨두기에는 중소기업의 고통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하듯, 고바야시 회장은 이번 인터뷰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환율 수준은 국가 경제와 정책에 대한 신뢰도의 척도"라며 주장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중소기업 업계가 '130엔'이라는 특정 수치에 집착하는 이유는 수입 원가 상승이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그 여파가 현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춘투(임금 협상)'의 동력을 꺾고 있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회장은 환율이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면 중소기업들은 도저히 임금을 올릴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장기간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탈출 성패가 이번 춘투에 달렸다고 보고 기업들에 대해 파격적인 임금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고바야시 회장의 지적처럼 엔저로 인한 비용 상승 압박은 정부의 임금 인상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금리 인상을 대하는 일본 재계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고바야시 회장은 현재 0.75% 수준인 기준금리를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평가하며 추가 인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특히 금리 인상이 기업 경영을 파탄으로 몰아넣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공회의소 자체 조사로 확인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엔저 방치로 인한 원가 상승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금리를 올려 환율을 방어하는 것이 중소기업 생존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선택'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재계의 압박에 일본 정부 내에서도 긴박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최근 당국이 외환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하며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레이트 체크(환율 확인) 등 실질적인 개입 징후가 포착되면서 달러당 엔화 가치가 일시 반등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류는 다소 미묘하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31일 선거 유세에서 현 엔저 상황을 “수출 산업에는 커다란 기회”라고 평가했고, 엔화 약세로 외환보유고의 평가이익이 확대된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그는 “엔고와 엔저 중 어느 쪽이 좋은지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고바야시 회장은 엔 환율이 단순히 달러 당 159엔에서 152엔으로 이동하는 수준의 미봉책은 무의미하다며 정부의 더 과감하고 지속적인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한편 일본 재계의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 경제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과거에는 엔저가 우리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위협 요소였으나, 지금은 일본 중소기업의 붕괴가 글로벌 공급망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큰 고려 요소다. 고바야시 회장이 언급한 130엔대 회귀가 현실화될 경우, 자동차와 기계 등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국내 주요 수출 업종은 가격 경쟁력 면에서 상당한 수혜를 입을 수 있다.

다만 일본이 환율 방어를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과 긴축으로 돌아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 글로벌 금융 시장의 변동성은 우리 당국이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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