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광역화 통합은 흔히 ‘백년대계’라 불린다. 국가의 공간 구조와 권력 배치를 장기적 시야에서 재설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합은 무엇보다 준비와 합의, 그리고 도민의 신뢰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추진되는 광주·전남 통합은 이 기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이번 통합 논의는 필요성 이전에 정치적 시간표에 맞춰 호출됐다는 점에서 문제의 출발선을 잘못 끊었다. 충분한 공론화나 단계적 로드맵 없이, 지방선거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통합시장 선출’이라는 정치 일정이 먼저 제시됐다. 행정구역 통합이 선거를 중심으로 역설계되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이다. 설계가 먼저이고 선거는 그 다음이라는 최소한의 상식이 무너졌다.
논의의 출발점 역시 지역 내부의 숙성된 요구라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대전·충남 통합이 전국 의제로 부상하자, 광주·전남이 즉각 반응했다. 이는 도민의 삶에서 비롯된 요구라기보다, 중앙 정치의 흐름에 지역 정치권이 일제히 보조를 맞춘 결과에 가깝다. 통합이 지역의 필요가 아니라 정치의 필요에서 시작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통합의 내용은 공백인데, 권력의 방향만 또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행정 기능은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전남의 자치 권한과 정책 주도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대신 누가 통합의 주도권을 쥘 것인지, 어떤 정치 세력이 유리해지는지는 빠르게 정렬되고 있다. 이쯤 되면 통합은 행정 개편이 아니라 정치 재편으로 읽힌다.
이 과정에서 전남 도민들 사이에 퍼지는 불안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전남·광주특별시’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 통합의 귀결이 광주 중심의 흡수 통합으로 흐를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인구·행정·재정의 중심이 광주에 집중된 구조에서, 전남이 실질적인 자치 주체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답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불신의 책임에서 전남 도정과 지역 정치권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통합의 조건과 한계를 분명히 설정하고 도민을 설득해야 할 정치적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통합의 주체인 도민의 의사를 확인할 실질적인 공청회와 숙의 과정이 사실상 부재하다. 백년대계를 말하면서 정작 백 년을 함께 살아갈 도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나는 정치인들의 권력욕에 기댄 통합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도민의 삶과 미래를 중심에 두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권력 유지를 기준으로 추진되는 통합은 개혁이 아니라 우범에 가깝다. 이런 방식의 통합은 당장은 정치적으로 편할지 모르나, 결국 지역에 깊은 균열과 후유증을 남긴다.
정치인이라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정치의 시간표에 맞춰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백년대계를 위해 살신성인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통합을 늦추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책임일 수 있다. 도민 앞에 충분히 설명하고, 불안을 해소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 없이 추진되는 통합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진정으로 현명한 정치인은 통합을 서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도민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다. 권력을 앞세워 통합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 자연스럽게 도민의 지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백년대계를 다루는 정치인의 모습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통합은 미래의 선택이 아니라, 역사 앞에 남을 책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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