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BTS아리랑에서 K-헤리티지 글로벌로] ① BTS의 '아리랑'은 K-헤리티지 글로벌 선언이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지피티]



방탄소년단이 새 앨범과 월드투어의 이름으로 ‘아리랑’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콘셉트 발표가 아니었다. 세계 대중문화의 최정점에 선 그룹이 한국의 대표적 전통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다.
 
이 선언은 “전통을 활용했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문화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동안 K팝은 세계로 나아가며 늘 설명의 언어를 동반해 왔다. 가사의 의미를 번역하고, 문화적 맥락을 덧붙이며, 한국적 요소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이는 필요했던 단계였다. 그러나 BTS의 ‘아리랑’은 그 단계를 건너뛰었다. 설명하지 않았고, 설득하지도 않았다. 대신 보여줬다. 그리고 세계는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왜 하필 아리랑이었을까.
아리랑은 민요이기 이전에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집단 기억의 집합체다. 이별과 이동, 상실과 재회의 감정이 세대를 건너 반복되며 쌓여온 정서의 데이터다. 특정 지역이나 시대에 묶이지 않고 수천 개의 변주를 허용해온 이 노래는 애초에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열린 구조였다. BTS는 이 구조를 재현하는 대신, 다시 작동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중요한 점은 BTS가 전통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통을 장식처럼 꺼내 쓰지도 않았고, 과거의 유산으로 박제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전통의 문을 열었을 뿐이다. 그 문을 통과하는 방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BTS의 선택은 K팝의 단계 변화를 상징한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확장하던 흐름이, 이제는 문명 코드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세계가 이 선택을 불편해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BTS는 한국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감정의 리듬을 있는 그대로 내놓았다. 강요하지 않았고, 해석의 여백을 남겼다. 글로벌 시대에 통하는 전통의 조건은 분명하다. 설명하지 않되 닫지 않는 것, 자기 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이되 타인의 해석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BTS가 문을 열었을 때, 그 문 안에는 무엇이 준비돼 있었는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세계가 머물 수 있는 이야기와 맥락, 시스템은 있었는가. 우리는 여전히 전통을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만 다루고 있지는 않은가.
 
 
‘K-헤리티지’라는 말은 자주 쓰이지만, 그 의미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많은 경우 관광 상품이나 국가 홍보의 수단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BTS의 ‘아리랑’이 보여준 가능성은 다르다. K-헤리티지는 전시물이 아니라 작동하는 체계이며,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에도 호출 가능한 기억이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보존이 아니라 호출이다.
 
 
이 선언은 BTS만의 것이 아니다. 질문은 이제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록으로 남겨왔는가. 무엇을 호출할 준비가 돼 있는가. 그리고 그 호출 이후를 감당할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세계는 더 이상 한국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이미 문은 열렸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문 안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다.
 
 
BTS의 ‘아리랑’은 하나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오래된 명제를 다시 증명한 사건이다. 동시에 이 증명이 우연으로 끝날지, 반복 가능한 구조로 이어질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