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영수증을 챙기며 ‘13월의 월급’을 계산하는 계절이다.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지 따져보는 시간이다. 최근 불거진 공천 금품 의혹은 정치에도 또 다른 ‘정산’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남겼다. 위법 여부는 수사와 재판이 가릴 일이다. 그러나 반복된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공천 주위에는 늘 돈이 따라붙는다.
우리는 이를 ‘공천헌금’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헌금은 대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 자발적 금전 제공이다. 반면 공천은 정당이 행사하는 권한이다. 일부 지역에서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좌우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공천권은 공직 진입을 결정하는 실질적 권력에 가깝다. 그 권한을 둘러싼 자금을 헌금이라 부르는 순간 거래의 성격은 흐려진다. ‘공천헌금’이라는 말은 이 거래에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왜 공천을 둘러싼 돈은 ‘뇌물’이 아니라 ‘헌금’이라는 이름을 얻고 다른 뇌물 사건처럼 곧바로 형사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까. 형법상 뇌물죄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 될 자의 직무 관련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천 심사에 관여하는 정당 당직자나 공천관리위원은 원칙적으로 공무원이 아니다. 정당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율적 결사체이기 때문이다. 공천은 공적 결과를 낳지만 법적으로는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으로 분류된다. 결과는 공적이고 과정은 사적이라는 이 간극이 공천과 자금의 연결을 형법상 뇌물로 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도 후보자 추천과 관련한 금품수수를 금지한다. 문제는 ‘대가성’ 입증이다. 공천 직전 급증한 고액 특별당비와 여러 명의 이름으로 나뉜 후원금, 이른바 쪼개기 후원이 공천의 조건이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형식은 합법을 갖추고 회계 장부에는 당비와 후원금이 기재된다. 그러나 그 돈이 공천이라는 권한과 맞닿아 있었다는 의도까지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특별당비와 쪼개기 후원이라는 형식적 분산은 공천 자금을 합법의 외피 안에 머물게 한다. 권한은 공적이지만 판단은 내부 절차 뒤에 남는다. 그 틈이 반복을 허용한다.
이 구조는 지방 정치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구의원과 시의원의 정치적 생존은 당협위원장을 겸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유권자가 표로 선택하지만 출마의 문은 공천권자가 연다. 지방의회의 견제 기능과 유권자에 대한 책임은 공천권자의 입김 앞에서 약해진다.
공천헌금의 문제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다. 선출직이라는 본질을 흔드는 데 있다. 공천에 돈이 개입하는 순간 임기의 방향이 달라진다. 공적 위임으로 시작한 임기는 정산의 시간으로 기울 수 있다. 조례 개정과 정책 결정은 가치 판단이 아니라 이해의 배분으로 작동할 유인이 커지고, 표창장 수여나 수의계약, 인사 개입 같은 권한 역시 사적 이해가 스며들 여지를 넓힌다. 임기 말이 되면 다음 공천을 염두에 둔 움직임도 시작된다.
여기에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가 놓인다.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본선보다 공천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공천은 희소해지고 그 무게는 돈과 조직, 관계와 충성으로 나뉘어 계산된다.
해법 역시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공천 시기 전후 고액 당비와 후원금의 실시간 공개, 자금 출처에 대한 실질적 소명 의무 강화, 공천 심사 과정의 기록 보존과 외부 검증은 최소한의 조건이다. 동시에 공천권의 집중을 완화하는 정당 내부 민주주의의 실질화와 승자독식 구조를 완화하는 선거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 권한을 분산시키지 않은 채 도덕만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달라질 것이 없다.
공천은 충성 경쟁의 장이 아니다. 공적 권한을 행사할 인물을 선별하는 절차다. 그 절차에 보이지 않는 대가가 스며드는 순간 민주주의는 투표 이전에 이미 기울어진다. 우리는 세금의 연말정산은 꼼꼼히 따지면서 권력의 정산에는 무심했다. 공천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그 권한에는 다시 가격이 붙는다. 그리고 그 계산서는 결국 시민에게 돌아온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