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이성은 느슨해지고 감정은 전면으로 떠오른다. 그 시간에 켜진 라이브 방송은 그래서 더 위험하고, 동시에 더 진실하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음주 상태로 진행한 심야 라이브 방송은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속사에 대한 답답함, 음악에 대한 부담, “나도 사람이다”라는 토로, 그리고 거친 표현들. 팬들은 걱정했고, 일부는 실망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그의 인간적인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무엇을 들은 것일까.
아이돌의 일탈이었는가, 청년의 고백이었는가, 아니면 시스템과 개인 사이의 균열이었는가.
스타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명제
세계적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은 더 이상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그들은 산업이자 플랫폼이며, 국가 브랜드의 일부다. 그 무게를 한 개인의 어깨에 얹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까지 해석되는 피로.
“회사만 아니면 다 이야기했을 것”이라는 말 속에는 통제된 메시지와 자율적 인간 사이의 긴장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표현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공인은 자유의 크기만큼 책임의 무게도 함께 짊어진다.
진짜 성숙은 솔직함과 절제 사이의 균형에서 비롯된다.
왜 음악을 시작했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정국은,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왜 음악을 시작했는가.
돈 때문이었을까.
명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대 위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초기의 방탄소년단은 ‘솔직함’으로 세계를 흔들었다. 청춘의 불안과 사회적 억압, 자아 탐색을 노래했다. 그 솔직함이 공감을 낳았고, 공감이 팬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성공이 커질수록 솔직함은 관리의 대상이 된다.
진심은 리스크가 되고, 즉흥은 위기가 된다.
이제는 더 깊은 차원의 성찰이 필요하다.
음악은 감정의 분출인가, 아니면 감정을 다듬어 전달하는 예술인가.
술에 기대어 터져 나온 말은 감정의 진실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감정을 정제해 타인에게 건네는 행위다. 날것의 외침이 아니라 숙성된 언어가 사람을 움직인다.
개인과 팀, 자유와 약속
리더 RM이 과거 “해체를 수만 번 고민했다”고 고백했던 발언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팀을 유지한다는 것은 개성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자유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방탄소년단은 ‘각자의 색’을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팀’으로 존재해왔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개인도, 팀도 흔들린다.
정국이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겠다”고 말한 대목은 자율 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 아래 활동하는 한, 그의 삶은 이미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 이름을 지켜온 시간과 동료들의 노력이 함께 얹혀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혼자 있을 때 완성되지만, 팀은 약속으로 유지된다.
이해와 주문 사이에서
이번 일을 두고 비난 일색으로 몰아가는 것도, 무조건적인 옹호로 덮어버리는 것도 성숙한 태도는 아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주문해야 한다.
세계 무대에서 노래하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 또한 세계적이어야 한다. 팬에게 솔직하고 싶다면 더 품격 있는 언어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진짜 반항은 욕설이 아니라 더 좋은 음악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진짜 자유는 충동이 아니라 책임 위에서 빛난다.
3월, 그들은 ‘ARIRANG’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아리랑은 한과 흥을 함께 품은 노래다. 슬픔을 토해내되, 끝내는 노래로 승화시키는 힘을 지녔다.
정국의 새벽은 흔들렸다.
그러나 흔들림이 곧 추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감정의 성찰이다.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무엇을 위해 무대에 서는지 다시 묻는 일이다.
스타에게도 사생활은 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
그 철학이 단단할 때, 새벽의 고백조차 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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