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핵 프로그램을 재건하려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핵무기 보유의 영구적 차단'을 명분으로 이란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명분은 처음부터 허약했다. 트럼프는 2025년 6월 1차 공습 직후 이미 “이란 핵시설은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8개월 뒤 다시 ‘핵 위협’을 들고나온 것은 스스로의 발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공습 당시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재개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제시되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이란에서 핵무기 제조를 위한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오히려 우라늄 농축 중단을 포함한 협상안을 테이블에 올렸지만 트럼프는 “협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 뒤 군사행동을 선택했다. 명분이 흔들리면 전쟁이 본색을 드러낸다. 미국의 공습은 결국 ‘핵 위협’이 아닌 지정학적 지배력 유지라는 오래된 목표의 연장선이다. 증거 없이 시작한 전쟁은 민간인 대량 피해의 결과로 나타났다. 이란의 여자 초등학교가 폭격을 당한 장면은 미국이 스스로 내세워온 ‘인권·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가면을 산산조각 냈다. 미국이 말하는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는 결국 힘이 규범을 대체하는 질서, 즉 미국 중심의 질서일 뿐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쳐 이란에 이르는 일련의 군사 개입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평화나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번 전쟁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쟁의 표면 아래에는 미국 vs 중국·러시아라는 구조적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구조적 충돌은 에너지·안보·경제 전반에서 이미 현실적 파급력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에너지 파트너다. 이란산 원유의 상당량(70~90%)이 중국으로 향한다. 미국의 대이란, 대베네수엘라 조치가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영국의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와 경제·금융 전문 방송 채널 CNBC도 미국의 이란·베네수엘라 행동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을 직격하는 효과를 냈다고 언급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공습이 대중국 견제 전략과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은 순진한 해석이다. 인도·태평양 전략, 반도체·희토류 공급망 재편 등을 통해 미국은 일찍부터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란 체제가 붕괴하거나 친미 정권으로 교체되면 러시아 역시 남쪽 전략 공간을 잃게 된다.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의 전략적 균형을 흔들고 있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블록화를 가속화하고 한국을 블록화의 경계선에 놓이게 할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과 유라시아 협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한국이 지정학적 위치상 어느 한쪽에 종속되면 심각한 전략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과 외교적 압박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한국이 특정 강대국에 일방적으로 기울 때 발생하는 비용은 단순한 경제 손실을 넘어 외교적 자율성의 축소로 이어진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균형을 회복하고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대안적 축의 마련이 필요하다. 한국은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와 연계해 새로운 ‘유라시아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한국 외교 전략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문제다. 그러나 전략적 비전과 현실적 대응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의 대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위기 속에서 한국은 단기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 판단도 동시에 요구된다.
한국이 취해야 할 기본자세는 무엇인가?
첫째, 무엇보다도 한국은 동맹의 틀 안에서도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군사행동에 대해 명확히 우려를 표명해야 한다. 이는 비록 동맹이라도 국제 규범을 넘어서는 행동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국가적 원칙이다. 한국이 민주주의·인권·평화를 외교의 가치로 내세우려면 그 가치를 훼손하는 국가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동맹이라고 해서 미국 전쟁에 무조건 동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청에는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 1기였던 2020년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됐을 때 한국은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절충적 대응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전쟁 상황이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다국적 공동 대응으로 포장하며 동맹국들에 사실상 전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뿐 아니라 중국까지 거론하며 군함 파견을 촉구한 것은 분명한 전쟁 참여의 압박 신호다. 셋째, 한국은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와 경제·에너지·물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한·미 동맹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다. 유라시아 경제협력은 한·미 동맹과는 별도의 트랙에서 관리해야 할 과제다. 넷째, 미국과 중국의 예정된 고위급 대화(3.31~4.2)가 단순한 ‘위기관리’를 넘어 ‘질서의 재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급망 안정, 에너지 안보, 한반도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상호협력의 비중은 그 어떤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한국이 미국의 전략만을 추종한다면 그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비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주요 지역을 군사·경제적으로 결합해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어떤 외교적 구조를 구축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미래는 미국·일본과 안보 협력,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와 경제·에너지·물류 협력, 아세안·인도와 다변적 네트워크를 동시에 운영하는 복합 전략에 달려 있다. 어느 한 축에 과도하게 종속될수록 한국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러시아·유라시아와 능동적으로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은 ‘동맹의 시대’를 넘어 ‘주권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미국의 전략을 그대로 추종하는 순간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은 사라진다. 한·미 동맹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 미국의 군사 전략을 자동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가 아니다. 한국은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우호적 협력관계를 병행하는 현실적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지경학적 조건이 요구하는 방향이다. 한국 외교의 핵심은 균형이며 그 균형을 지키는 것이 곧 한국의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