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석유 최고가격제 최단기간에 끝내야 한다.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관세 폭탄으로 세계를 뒤흔들던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 전쟁으로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비롯된 중동 유전 시설의 파괴와 호르무즈 해협의 경색은 중동발 유가 인상을 불러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의 주름살은 더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침공한 이유에 대해 미국·이스라엘의 중동 전략, 미국의 중국 국제동맹 세력 견제, 미국 국내적 정치적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중동 불안의 씨앗은 100년 넘게 소급한다. 1차 대전 중 영·불 양국이 중동을 민족과 종교와 관계없이 위도와 경도선에 따라 국경선을 자른 것, 영국의 밸푸어(Balfour) 선언 등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으로 돌아오게 된 것, 1978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친미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신정 공화국이 집권하면서 이란이 반미 노선을 취한 것 등 세월이 지날수록 중동의 갈등은 꼬일 대로 꼬여 왔다. 이란의 시아파에 대항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수니파를 미국이 지원하면서 아랍은 종교적 갈등에 친미(또는 친 이스라엘) 대 반미, 쿠르드족 등 민족 갈등까지 삼중으로 겹쳤다. 중동지역이 불안정해지면 연민의 마음이 들다가도 석유 수급 불안과 유가 인상 등 우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지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서 그런 것일까.
 
늘 제조업의 보조수단쯤으로 여겨지는 에너지가 관심을 받을 때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전쟁 등 비상사태 시기이다. 1973년 4차 중동전이 터지면서 유가가 4배나 폭등한 1차 석유파동, 1978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수년간 석유 감산으로 이어진 2차 석유파동, 그리고 호사가들이 성급하게 3차 석유파동이라고 명명하고 싶어 하는 이번 미국-이란 전쟁 등 전란이 발생하면 석유는 갑자기 주연이 된다. 1, 2차 석유파동 당시에는 석유는 발전용으로 주로 썼지만, 지금은 수송용과 석유 화학용 나프타까지 용도가 확대되어 경제의 체감 효과는 더욱 커졌다. 생산지가 중동에 몰린 석유는 이들 지역에 전쟁이 터지면 생산 감소와 유가 폭등, 석유제품 수출국들의 수출 물량 감축 등 세계 경제에 연쇄 충격을 주게 된다. 지난 2월 말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비상이 걸렸다. 주유소 휘발유가 리터당 2000원을 넘자,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고 석유 조달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중심으로 비축유의 공동 방출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각국은 에너지 대책 마련에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정부는 석유확보 방안 수립과 아울러 3월 13일부터 석유제품에 대한 최고가격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석유 수급에는 큰 문제는 없을 전망이다. 이번 중동 전쟁은 미국 중간선거(11. 3일)를 앞둔 트럼프로서는 오래 끌기 어렵다는 예상이 유력하다. 단기간 승리로 중간선거를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려고 했던 트럼프 측의 계산은 전쟁이 2~3개월을 끌어 국제적인 불만, 미국 내 반전 여론과 인플레이션 문제 등이 확산되면 오히려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지만 의석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번 중간선거가 트럼프 2기의 후반부 국정 운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리의 원유 수입(2024년, 10억 배럴)은 중동산(71.5%)이 압도적으로 높고 미국(16.4) 등에서도 수입한다. 중동 국가 중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32.2%), UAE와 쿠웨이트가 10% 내외이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로 이란산 석유는 수입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연간 중동산 원유 7억 배럴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여 수입된다. 호르무즈 해협이 한 달 봉쇄되면 평균 6000만 배럴(연간 수입량의 6%)의 원유 조달이 차질을 빚는다. 우리 정부는 정부와 업계 비축량이 1억5700만 배럴 수준이고 향후 3개월 내 추가 확보가 가능한 물량까지 포함하면 2억 배럴에 달한다고 확인하였다. 미국 등지의 수입을 늘리는 것도 조달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파괴된 중동 석유 시설의 복구가 변수지만 석유 수급 측면에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석유제품의 가격 문제이다. 휘발유 가격 등이 급등하자 우리 정부는 중동 전쟁의 발발 2주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하였다. 1차로 정유사의 공급가격을 휘발유의 경우 리터당 1724원으로 상한을 정하고 2주마다 가격을 갱신하고 3개월마다 정유사의 손실을 재정에서 보전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주유소의 가격 인상을 주 3회로 제한하는 나라(오스트리아, 독일)가 있고, 프랑스는 3월까지 가격을 동결하도록 하였지만 우리보다 강도가 약하다. 석유 최고가격제도는 고육지책이겠지만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첫째, 타이밍이 다소 빨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유가 부족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가격을 낮추어 소비를 유지토록 하는 것은 시장 기능과 역행한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치솟는 가스 가격을 억제하고자 EU는 최고가격제를 도입했지만, 구두 경고에 그쳤고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장 기능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부는 휘발유 리터당 1800원이면 최고가격제를 해제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그 이전이라도 최대한 빨리 제도를 종료할 필요가 있다. 중동 전쟁의 전개가 변수지만, 30년 전 자유화한 석유제품 가격결정 체제에서 과거로 회귀하여 정부가 직접 관여하는 만큼 궤도에서 이탈하는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가격에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톱다운 방식으로 정책이 결정되면서 향후 정치적으로 책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둘째, 가격을 정부가 정하고 정유사의 손실을 재정에서 보전해 주는 방식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재정에서 정유사의 손실을 메워주는 것은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자가용을 타는 사람들을 교차 지원하는 셈인데 이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문제이다. 정유사가 가격 입증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결국 정부에서 정유사의 손실을 검증하고 보전액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정보 공개의 투명성, 과다 또는 과소 보전의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셋째, 정유사가 주유소에 대한 공급과 마찬가지로 발전소 등에 공급하는 가격에도 동일한 손실 보전 방식을 취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전기요금은 정부가 규제하고 있는데 발전소에도 주유소에 대한 것과 동일한 공급가격을 적용할 경우, 석유 발전사의 과도 또는 과소 이익이 발생할 수 있고 다른 발전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정부가 3개월마다 정유사의 자료를 검증하고 정산하는 과정에서 정유사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질 개연성이 있고, 자유화된 석유제품 시장이지만 정유 4사의 과점 체제가 갖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개선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정유 4사는 석유제품을 수출(생산량의 35%)하는 입장에서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에 연동하여 국내 제품가격을 매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입해 놓거나 미리 계약한 원유를 들여와 석유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올라간다고 해서 곧바로 석유제품 가격을 올릴 생산 원가적 이유는 없겠지만 수출가에 상당하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 상승과 연동하여 정유사가 국내에 공급하는 제품의 가격도 올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간 기름값이 올라갈 때마다 자유화된 석유제품 가격이지만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에 대해 정부는 뾰족한 해결 방법도 없이 난처한 처지에 있었다. 이번을 계기로 향후 석유제품, 더 나아가 전기요금, 도시가스 등 에너지 가격결정 체계 전반에 대한 바람직한 결론을 내리고, 정부 책임의 소재와 한계도 명확히 세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이번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다소간의 보상이 되지 않을까.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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