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상법 대전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이사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1차 상법 개정에 이어 곧장 다음 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확대하는 2차 상법 개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올해 2월에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까지 이뤄지면서 한국 자본시장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에 시장은 호응했다. 지난해 3월만 해도 2500~2600선에서 등락했던 코스피는 올해 1월 22일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했고 2월 25일에는 6000선까지 돌파하는 등 1년 동안 100% 넘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코스닥 역시 719.41에서 1121.44로 오르며 55.88%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상장사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개정 상법이 처음 적용되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는 사내이사 수를 확대하고 임기를 변경하는 등 집중투표제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꼼수’들이 등장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제도적 개선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나 실질적인 문화로 정착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도의 변화와 우려가 상존하는 가운데, 상법 개정의 핵심 축 역할을 하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천준범 부회장(와이즈포레스트 대표 변호사)을 최근 만났다. 그는 "상법 개정은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수술"이라며 "제도 변화에 맞춰 기업들도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이 자본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상법 개정은 ‘암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메스를 드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시장에 원칙을 다시 세움으로써 투자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다. 더 이상 회사가 돈을 잘 벌고도 물적분할이나 합병을 통해 ‘뒤통수’를 치고 이익을 독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보되면서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자본 시장에서 상장사들의 주식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되는,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회사가 경영을 잘못해서 발생한 일이 아니다. 실적이 좋을 때에도 회사의 영업이익을 지배주주가 가져가고, 주주들에게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에 악순환이 지속됐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개정 상법 중 실제 현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내용은.
"자사주 의무 소각이 단기간에 가장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이전까지는 지배주주가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양도해 ‘백기사’로 활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배주주가 자신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에 회사의 돈을 사용하는 셈이다. 반면 소액주주들은 유통주식으로 지분율을 확보해도 지배주주에게 대항하기 어려웠다. 이는 기업의 주가가 자산가치보다 낮게 형성되는 ‘저PBR(주가순자산비율)’ 문제로 이어진다. 저PBR 기업은 M&A 대상이 되는 것이 시장의 원칙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런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을 회복시킬 수 있는 ‘즉효약’이다."
-상장사들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부족하다고 우려한다.
"미국의 포이즌필(적대적 인수 시도 시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수 있게 하는 권리)이나 차등의결권은 환경의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상장사는 대다수가 소유·분산 구조로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아 M&A 시도가 용이하다. 이 때문에 상장사 이사회는 M&A 시도가 회사에 해악을 입힐 것으로 판단할 경우 예외적으로 포이즌필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 지배주주가 20~30%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상장사들은 그 자체로 이미 경영권 방어가 보장된 셈이다.
차등의결권(특정 주식에 1주당 여러 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1대 창업자가 있는 구글, 메타 같은 회사들은 차등의결권이 부여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차등의결권은 상장이 되지 않고 상속도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주회사가 손자회사에 대해 보유한 지분율이 낮아도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이런 중복상장 구조가 사실상의 차등의결권이다."
-올해 정기 주총은 개정 상법의 사실상 첫 시험대다.
"당장 변화가 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 안건도 모두 통과됐다. 국민연금이 반대한다고 해도 지분율이 10%가 채 되지 않고, 외국인 주주가 많은 것도 한 이유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ISS, 글라스루이스 등이 있고 국내에도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 한국ESG평가원, 한국의결권자문, 한국ESG기준원 등이 있다. 하지만 인력이 적고 처리해야 할 안건의 양은 많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자문이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적절한 투자 정보 제공 역시 시급한 문제 중 하나다."
-1·2차 개정 상법의 안착을 위해 필요한 후속조치가 있다면.
"최근 도입 움직임이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중요할 역할을 할 거다. ‘증거개시제도’로 불리기도 하는데, 소송 전에 당사자들이 보유한 증거를 모두 상호 공개해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재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재는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하더라도 회사 측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 입증에 어려움을 겪는데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주주 권리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판사들의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도가 바뀌어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보수적인 방향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
-또 다른 입법 과제는 없나.
"기업집단법 제정도 필요하다. 상법은 주주가 대표이사를 선임하도록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계열사 대표들이 그룹 인사의 대상이다. 상법과도 맞지 않고, 투명성도 떨어진다. 상법에서 기업집단에 관한 특별규정을 충분히 마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공정거래법을 통해 적용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상법에 기업 집단의 회장 및 계열사 사장단을 선임하는 절차, 지주회사의 책임, 의사결정과정 등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시장 친화적인 거버넌스 개념은 가능한가?
"상법 개정에 맞춰 상장사들의 인식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상장사를 ‘퍼블릭 컴퍼니’라고 부른다. 누구나 주식을 살 수 있고 대중이 자금을 대는 만큼 대중의, 공공의 회사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상장을 하고도 지배주주가 여전히 ‘내 회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장성한 자식을 결혼시키듯이 상장한 회사를 품에서 떠나보내줘야 한다. 한국거래소에서 상장기념식을 할 때 지배주주가 선서를 하는 건 어떨까? ‘이제 이 회사는 내 회사가 아닙니다, 모든 주주들의 재산과 행복이 나의 손에 달렸습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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