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영화 이야기⑮ | 인간·문화·자연] '왕과 사는 남자', 측은지심과 홍익인간 정신의 한국인들

계룡산 자락 동학사의 숲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곳은 시간과 인간의 결단이 겹쳐진 자리다. 새벽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숲길을 따라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붉게 물든 단풍 빛 옷 한 벌이 들려 있다. 옷은 낡았지만 정갈하게 접혀 있다. 그것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올리는 마음의 예(禮)다. 그는 영월의 엄홍도다.
 
법당 앞에는 이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서 있다. 그의 곁에는 노모가 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말보다 먼저 감정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엄홍도는 떨리는 손으로 단풍빛 옷을 내민다.
 
“이 옷은… 마지막입니다.”
 
그 한마디가 숲의 공기를 가른다. 김시습은 그 옷을 받아 들고 한동안 내려다본다. 그것은 단종을 향한 충정이며, 지켜내지 못한 시대에 대한 자책이기도 하다.
 
곧이어 초혼제(招魂祭)가 시작된다. 향이 피어오르고, 숲의 공기와 섞이며 천천히 번진다. 김시습이 먼저 절을 올린다. 이어 충의공(忠義公) 엄홍도가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다. 그 순간 억눌러 왔던 감정이 터진다. 엄홍도의 눈물이 제사상 아래로 떨어진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숨이 흔들리고 어깨가 떨린다. 김시습 역시 고개를 깊이 숙인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다. 노모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 눈물은 개인의 슬픔이 아니다. 한 시대가 지켜야 할 도리를 놓쳐버린 데 대한 통곡이다.
 
이 초혼제는 이름 없는 제사다. 그러나 가장 엄숙한 제사다. 권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 인간은 이를 포기할 수 없다. 단종은 세상을 떠났으나, 그를 향한 마음은 살아 있다. 동학사의 숲은 그 기억을 품고 지금도 말없이 전하고 있다.
 
이 울림은 영월로 이어진다. 강물이 굽이치는 그 땅, 단종이 유배되어 마지막 시간을 보낸 청령포. 그곳에는 이름 없이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 엄홍도. 그는 높은 벼슬아치도 아니고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도 아니었다. 말단에 가까운 공직자였지만, 끝내 단종을 외면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역사에는 크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는 ‘참 인간(眞人)’이다.
 
그 영월에서 엄홍도는 공주로 와서 또 한 사람을 만난다. 김시습. 세상을 떠돌던 사람과, 세상 속에 남아 있으되 마음은 이미 떠난 사람이 마주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길지 않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같은 방향으로 시대를 살아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게가 담겨 있다.
 
엄홍도의 눈빛은 흔들린다. 그는 끝내 단종을 지켜내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묶여 있다. 김시습은 그런 그를 바라본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한 번의 움직임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지 않는다. 위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서로의 선택을 인정한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깊다. 권력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시대를 견뎌낸 민초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오래 남는다.
 
이 흐름은 태백산으로 이어진다. 탄허(呑虛) 스님이 쓴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 지비’는 단순한 비석이 아니다. 폐위된 왕을 끝내 ‘대왕(大王)’으로 기억하려는 백성들의 의지다. 권력은 단종을 지웠지만, 민심은 그를 지우지 않았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주천리, 북향의 노산 아래 자리한 ‘귀로재(歸路齋)’ 또한 같은 맥락이다. 돌아오지 못한 임금을 향해 ‘돌아오라’는 마음이 지명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길에는 단종의 도승지, 곧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곽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그는 끝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권력이 아니라 신의를 선택했고, 그 신의를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그래서 그는 직함보다 ‘충절의 사람’으로 기억된다.
 
경기도 남양주의 사릉에 서면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단종의 왕후 정순왕후의 삶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잃고, 세조의 도움마저 거부한 채 삯바느질로 긴 세월을 견뎌야 했던 한 여인의 삶이다. 능은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무겁다. 바람이 스치고 영월을 향해 굽어선 소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그 세월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다. 한국인은 권력과 명예보다 신의와 의리(義理)를 더 오래 기억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한국 영화 역대 랭킹 2위에 오르며 N차 관람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출발점이며, 그 가운데 ‘인(仁)’의 근본이다. 이 영화 전편에 걸쳐 그 ‘인’이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마음을 공동체의 원리로 확장한 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명이다.
 
동학사의 숲에서 시작된 초혼제의 눈물, 영월 강가에서 이어진 침묵, 태백산 바람 속에 남은 민초들의 기억, 귀로재 북향집에 스며든 기다림, 사릉의 고요 속에 쌓인 사랑의 세월.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영적 언어로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권력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도리가 아니겠는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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