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셸 박 스틸 전 연방 하원의원을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하면서 1년 넘게 이어진 주한미국대사 공백이 마침내 해소 국면에 들어섰다. 백악관이 지명을 발표했고, 상원 인준을 거쳐야 정식 임명이 확정된다.
서울과 워싱턴이 북핵, 방위, 통상, 투자, 공급망, 대중 전략, 중동 정세라는 복합 의제를 한꺼번에 다뤄야 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인선은 단순한 인사 발표를 넘어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의 한반도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외신들은 이번 인선을 두고 트럼프 2기 내내 비어 있던 서울 대사 자리를 메우는 조치라고 전했고, 이어 한미동맹의 현대화, 무역·투자 현안, 북한 위협과 중동 문제까지 양국의 공동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이뤄진 지명이라고 짚었다.
미셸 박 스틸, 한국명 박은주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이후 한국·일본·미국을 거쳐 성장한 한국계 미국 정치인이다. 미국 연방 하원 공적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서울 출생이며, 페퍼다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남가주대에서 MBA를 받았다. 사업가로 활동한 뒤 캘리포니아 정치에 입문해 주 조세형평국 선출위원,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를 지냈고, 2020년 연방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2022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24년 선거에서는 오렌지카운티 지역구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그는 의회 재직 중 이산가족 성격의 한국전쟁 이산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공화당 소속의 보수 정치인이며, 이번 지명 자체가 트럼프 진영과의 정치적 신뢰를 반영한다. 로이터통신은 스틸을 “보수 성향 공화당원”이라고 규정했고, 그는 트럼프 1기 시절 아시아계·태평양계 미국인 자문위원회에 참여했다. 이것은 그가 단순한 한국계 상징 인사가 아니라,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이미 검증된 충성도와 정책적 친연성을 가진 인물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이번 지명은 ‘한반도 전문 직업 외교관’의 귀환이 아니라, 트럼프식 정치외교의 연장선에서 선택된 ‘정치 대사’ 성격이 짙다. 바로 이 점이 향후 한미관계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계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상징성이다. 그가 정식 임명될 경우 성 김에 이어 두 번째 한국계 주한미국대사가 된다. 워싱턴의 언어와 서울의 정서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기대는 분명 현실 정치에서 힘을 발휘한다.
둘째, 지역 정치와 연방 정치를 모두 경험했다는 점이다. 미국 대사는 외교 문장만 잘 써서는 안 된다. 의회, 지방경제, 기업, 로비, 여론, 언론의 결을 함께 읽어야 한다. 스틸은 캘리포니아 지방행정과 연방의회를 모두 거친 정치인이다.
셋째, 트럼프 진영과 직접 소통 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한미 간에 민감한 관세, 방위비, 투자, 공급망, 주한미군, 대중 견제 문제가 겹쳐 있을수록, 백악관과 직접 닿는 대사의 실효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계라는 사실이 곧바로 한국에 유리한 대사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미국 대통령의 특명전권대사이지, 한국계 공동체 대표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을 잘 안다는 기대가 큰 만큼, 미국 국익을 앞세운 강력한 메시지를 낼 때 한국 사회의 실망도 더 클 수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이 거래적 성격을 강화할 경우, 방위비 분담, 대미 투자 압박, 통상 재조정, 대중국 디커플링 혹은 디리스킹 참여 요구가 다시 전면에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신들이 이번 지명과 관련해 한미동맹의 현대화, 무역과 투자, 북한 위협, 지역·글로벌 현안 협력을 함께 거론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 표현은 외교적 수사이지만, 동시에 앞으로 처리해야 할 갈등 의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셸 박 스틸의 역할은 결국 “가교”와 “전달자” 사이에서 갈릴 것이다. 가교는 양국의 인식 차를 좁히는 인물이고, 전달자는 백악관의 요구를 상대국에 관철시키는 인물이다. 어느 쪽 비중이 더 클지는 상원 인준 과정과 취임 이후 발언, 그리고 실제 첫 의제에서 드러날 것이다.
한미 양국이 지금 직면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핵과 미사일 위협은 여전하고,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와 조선, 에너지와 원전, AI와 공급망 재편이 한꺼번에 얽혀 있다. 여기에 중동 불안과 중국 견제, 미국 대선 이후의 국내정치 파장까지 겹친다. 대사가 단순한 친선 인사가 아니라 전략 조정자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대 주한 미국대사를 돌아보면, 서울의 미국대사관은 늘 단순한 외교 공관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동맹의 설계자였고, 어떤 때는 군사전략의 전달자였으며, 또 어떤 때는 한국 민주주의의 중대 국면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외교 채널이었다.
미 국무부 역사국 자료에 따르면 초대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는 1949년 4월 20일 신임장을 제정했고 1952년 9월까지 재임했다. 전쟁 전야와 한국전쟁 초기라는 국가 존망의 시기에 한미관계의 제도적 골격을 놓은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필립 하비브, 리처드 스나이더, 윌리엄 글라이스틴, 리처드 워커, 제임스 릴리 등은 박정희 체제와 전두환 체제, 민주화의 파고를 거치며 한미관계를 단순한 외교 차원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일부로 만들었다.
최근의 흐름도 흥미롭다. 캐슬린 스티븐스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재임한 직업 외교관이었고, 성 김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재임한 한국계 직업 외교관이었다. 마크 리퍼트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재임한 정치 임명 대사였고, 재임 중 2015년 서울에서 흉기 피습을 당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해리 해리스는 2018년 임명된 비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였고, 필립 골드버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임명된 뒤 지난해 1월 떠난 마지막 상원 인준 대사였다.
이 흐름을 보면 서울 주재 미국대사는 대체로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국무부 커리어를 쌓은 직업 외교관형이고, 다른 하나는 정권의 정책 방향을 강하게 반영하는 정치 임명형이다.
스틸은 후자에 더 가깝다. 따라서 그의 장점은 대통령과의 정치적 직통성에 있고, 약점은 정교한 외교 기술보다 정권 메시지 전달에 치우칠 수 있다는 데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국계 대사”라는 상징의 정치적 무게다. 성 김은 한국계라는 사실보다 북핵과 6자회담, 동아시아 외교 경험을 앞세운 전문 외교관이었다. 반면 미셸 박 스틸은 의회와 지방정치, 선거와 지역구 정치의 문법을 체화한 인물이다.
둘은 같은 한국계라도 완전히 다른 경로를 밟아 서울에 오게 된 셈이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성 김이 외교적 정교함과 협상 경험으로 평가받았다면, 스틸은 정치적 선명성과 백악관 접근성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와 재계, 국회는 이 차이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한국계라는 친숙함에만 기대면 오판할 수 있고, 반대로 보수 공화당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경계만 앞세워도 실익을 놓칠 수 있다.
향후 한미관계를 전망하면, 낭만보다 구조를 봐야 한다.
첫째, 동맹은 더 실용적이고 거래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북핵 억지와 미사일 방어, 확장억제 문제는 여전히 중심축이겠지만, 못지않게 통상과 투자, 기술·산업정책이 외교의 앞줄로 이동할 것이다. 셋째, 중국과의 전략 경쟁이 심화할수록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대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외신들이 이번 지명을 설명하며 동맹 현대화, 무역·투자, 북한 위협, 지역·글로벌 과제를 함께 열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주한미국대사가 안보 대사인 동시에 경제 대사, 공급망 대사, 기술 대사여야 함을 뜻한다. 미셸 박 스틸이 성공하려면 한국과의 문화적 친연성만이 아니라, 백악관과 의회, 한국 정부와 기업, 주한미군과 대미 투자 기업 사이를 실제로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결국 이번 인선의 본질은 하나다. 워싱턴은 서울을 다시 비워둘 수 없는 자리로 판단했고, 그 자리에 트럼프와 정치적 결이 맞는 한국계 보수 정치인을 앉히려 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국을 중시한다는 신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한미관계가 더 직접적이고 더 노골적인 협상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음을 예고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미셸 박 스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친한 이미지가 아니다. 한국 출생의 상징을 넘어, 한미 양국이 지금 맞닥뜨린 안보·통상·기술·가치의 복합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냉정한 균형감각이다.
그러나 진정한 평가는 상징이 아니라 성과가 내릴 것이다. 대사는 혈통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결국은 시대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냈는가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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