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윤의 플러그인] 넙치보다 반도체···제주도 수출 지형 바꾼 스타 팹리스의 힘

  • 제주도 3월 수출, 반도체 73% 차지

  • 2005년 제주도로 간 팹리스 '제주반도체'

  • 전문가들 "팹리스 생태계 강화해야"

그래픽제미나이
[그래픽=제미나이]

제주도의 수출 지형이 바뀌고 있다. 대표 특산품인 감귤과 신선한 넙치 대신 반도체가 그 자리를 꿰차면서다. 척박한 첨단 산업 환경 속에서 스타 팹리스의 활약이 제주도의 경제 지도를 통째로 바꾸고 있는 모양새다.
 
16일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3월 광역자치단체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제주도의 총 수출액은 6359만 달러(약 937억5000만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7.9% 증가한 규모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수출 증가율이 충청남도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극적인 수출 성장의 일등 공신은 다름 아닌 반도체였다. 제주도의 반도체 수출액은 4659만 달러(약 686억1310만원)로 지역 수출의 약 73%를 차지한다. 전년 동기 대비 251% 급증했다. 수십 년간 제주의 수출 효자 노릇을 했던 농수산물을 제치고 첨단 반도체가 제주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제주도가 '반도체의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배경에 팹리스 기업 '제주반도체'가 있다. 2000년 경기도 판교에서 설립된 아펨스테크놀로지가 2005년 제주도로 본사를 옮기면서 사명도 제주반도체로 변경했다.
 
이들의 주력 무기는 저전력 메모리다. 저전력 D램(LPDDR)과 낸드플래시를 결합한 멀티칩 패키지(MCP) 등에서 글로벌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집중하고 있는 고성능 서버 대신에 통신장비, 사물인터넷(IoT) 기기,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장비용 메모리에 주력하며 업계 틈새 시장을 공략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제주반도체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3022억원으로 전년 대비 86.2% 늘었다. 영업이익은 35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74% 성장을 이뤄냈다. '굴뚝 없는 공장'인 팹리스 기업이 제주도라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거둔 값진 성과다.
 
반도체 설계만을 담당하는 팹리스의 특성상 대규모 채용은 어렵다. 제주반도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총 인력은 139명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은 인원 수 이상의 가치가 있다. 지난해 32억원의 법인세를 지출하며 지자체의 재정 확충에 기여했다. 반도체 설계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제주대 등 지역 대학과 산학 연구개발(R&D) 체계에도 힘쓴다.
 
하지만 제주반도체와 같은 개별 기업의 분투가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장되기엔 현실적 벽이 여전히 높다. 제주도 수출의 반도체 쏠림 현상은 역설적으로 제주반도체 성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제주도 이외 지역을 살펴보더라도 팹리스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지역 수출을 견인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전문가들은 제주반도체의 성과가 단발성 기적에 그치지 않으려면 국내 팹리스 생태계 전반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 수준이다. 반도체 수출 역시 60% 이상이 메모리에 편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류수정 서울대 교수는 "국내 팹리스 산업의 고질적인 파편화 구조를 극복하려면 개별 기업 단위의 지원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설계부터 생산, 최종 수요처에 이르는 국가 전략적 반도체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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